송보영 수필가

그들에게서는 바람의 냄새가 났다.

오랜 세월동안 그곳에 있으면서 온갖 풍상을 견뎌 낸 듯 전신이 검푸른 회색빛이고 여기저기 부서져나간 상처자국으로 얼룩져 있다. 서로 각기 다른 이야기들을 가슴에 담고 있는 듯 그들의 모습 또한 다양하다.

갈바람이 몰고 온 낙엽들이 흩날리는 광장 한 옆에서 목을 길게 늘이고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이. 두 손을 모아 하늘을 향해 기도 하고 있는 투박한 손. 이제 막 찾아 온 사랑의 숨결을 놓치지 않으려는 듯 부둥켜안고 있는 이들. 쌍둥이 어린자식을 업고 물동이를 이고 있는 여인. 흘러내린 바지 아래로 하반신을 드러 내놓고 헤벌쭉 거리며 헤픈 웃음을 웃고 있는 남정네들. 이들은 박달재 휴게소 광장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나무를 깎아 만든 조각상들의 모습이다.

그 중에서도 바람을 맞으며 쌍둥이를 업고 서 있는 여인의 조각상이 내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물동이를 이고 있어 위로 쳐들려진 짧은 베적삼 아래로 그녀의 젖가슴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봉긋하게 솟아있는 봉우리가 보는 이로 하여금 얼굴을 붉히게 할 수도 있으련만 조금도 민망스러워 보이지 않는다. 다만 그녀의 허리께에 앞으로 업혀있는 쌍둥이들이 몹시 배가 고픈 듯 제 어미의 가슴팍을 올려다보고 있는 것이 안쓰러워 보일뿐이다. 아이를 앞으로 업고 있는 것은 어쩌면 허기진 어린 것들의 주린 배를 한시라도 빨리 채워 주고 싶은 어미의 애끓는 마음이 아닌가 싶어 가슴이 시려 온다. 저 여인의 지아비는 누구일까. 혹시 그녀 옆에서 헤픈 웃음을 웃고 있는 남정네들 중 하나가 아닐까. 뿌린 씨앗은 돌보려 하지 않고 한 눈 팔 곳을 찾아 두리번거리고 있는 듯해 보이는 철없는 사내, 그가 아닐까.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여인이 이고 가는 물동이가 웬 지 더 무거워 보인다. 그녀가 이고 가는 물동이는 어쩌면 그녀에게 짐 지워 진 버겁기만 한 삶의 무게일지도 모른다 싶어서다.

고달파 보이는 여인의 조각상을 보고 있으려니까 오랜 세월동안 무던히도 내 가슴을 시리게 했던 한 아낙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와 내가 만난 것은 결혼 초 시댁에서였다. 그때 그는 사십대 초반 쯤 된 중년 여인이었다. 우리 가족들은 그를 두름불 아주머니라 불렀다. 아주머니와 나는 친 동기간 이상으로 마음을 나누며 오랜 세월을 함께 보냈다. 집안 대소사의 크고 작은 일들을 치룰 때마다 내 곁에는 그녀가 있었고 성품이 바르고 부지런하여 어떤 일을 맡겨도 걱정 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웬 일인지 그의 삶은 평탄하지가 못 했다. 가족의 소중함을 아는지 모르는지 주벽이 심한데다 폭력을 일삼는 남편. 병든 시어머니. 다섯이나 되는 어린 자식들. 이 모두를 보살펴야 하는 일들은 한 여인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힘겨운 일이였다. 그런 그에게는 식은 밥 한 그릇일지라도 더 없이 귀한 것이 되곤 했다. ‘쉬어서 먹기에 좀 그런 밥도 냄새가 나지 않도록 깨끗이 헹구어 나물을 넣고 끓이면 아이들의 한 끼 먹을거리가 된다.’ 며 아픈 웃음을 웃곤 하던 아주머니.

때로는 어디론가 훌쩍 떠나 버리고 싶어 보따리를 싸 보지만 눈앞의 어린 자식들 때문에 그냥 주저앉을 수밖에 없다며 눈물 바람을 일으키곤 하던 아주머니. 그런 아주머니를 볼 때마다 늘 가슴이 저렸다.

돌이켜 보면 모진 가난과 고통을 숙명인양 참고 받아들이며 살아 낸 어미의 덕에 그의 어린 자식들은 거리로 내 몰리지 않았고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배 골치 않으며 자랄 수 있었던 것은 아닌가 싶어 새삼 가슴이 뭉클해온다. 내 삶의 언저리에서 맴돌며 나를 눈물겹게 했던 그녀의 애달픈 모정과, 쌍둥이를 업고 물동이를 이고 가는 여인의 조각상에서 버겁지만 인내하며 살아가는 여인들이 빚어내는 아름다운 삶의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이곳 박달재 휴게소는 이재를 넘으려면 한 번쯤은 가던 걸음을 멈추고 잠시 쉬어가곤 하던 길손들의 쉼터다. 감자 부치게 한 쪽과 텁텁한 막걸리 한 잔으로 요기도 하고 자판기 커피 한 잔으로 피곤을 달래며 광장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에 잠시 마음을 빼앗겨 보기도 하는 그런 곳. 여행을 즐겨 하는 이들이라면 이런 쉼터에서 잠시 쉬어본 경험은 얼마든지 있으리라.

저들을 만든 조각가도 어쩌면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사람 사는 이야기 듣는 것을 좋아 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게 다니다가 쉬어가고 싶으면 근처 쉼터에서 차 한 잔을 하며 길손들이 하는 이야기를 몰래 엿듣기도 하는 그런 사람. 그런 그가 이곳에 저 목상들을 가져다 놓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본다. 오가는 길손들로 하여 그런대로 꽤나 붐볐을지도 모르는 이곳에 그의 마음이 담긴 목상들의 터전을 마련 해 놓고 그들을 통해 수런대며 살아가는 삶의 소리를 들려주고 싶었던 것은 아닐 런지. 웃고 울고 기다리고 참아내며 살아가는 그런 진솔한 삶의 이야기. 애틋한 사랑 이야기 같은 것들을.

어느 샌가 짧은 가을 해는 목상들 위로 저녁노을을 드리우기 시작하고 광장안의 낡은 스피커에서는 이재의 전설로 남아 있는 박달이와 금봉이의 애달픈 사랑 노래가 긴 여운을 남기며 울려 퍼지고 있다. 갈바람이 광장 안에 휘날리는 낙엽들과 애절한 노래의 끝자락을 휘감고 불어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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