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줄근하게 지쳐 보이는 소와 당나귀들 상태로 보아서는 청풍도가 전들 것이 아니라 밤새 먼 길을 걸어온 행상들 것으로 보였다. 무엇인가 까닭이 있을 터였지만, 최풍원으로서는 전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장사꾼이 물건을 싣고 왔으면 한시라도 바삐 장마당에 짐바리를 풀어놓고 팔려고 동동거리는 것이 장사하는 사람들의 습성이었다. 소나 마차를 끌고 다니는 장사꾼들은 큰 장사꾼들이었다. 그런 장사꾼들이 짐바리를 풀어놔야 장마당이 풍성해질 터였다. 그런데 큰 장사꾼들은 물건을 풀지도 않고 잔챙이 등짐장사나 봇짐장사만 보퉁이를 풀어놓고 있으니, 장날이라 오가는 사람들만 번잡할 뿐 여기저기 쌓아놓은 물건들로 풍성해야할 장마당은 뭐가 빠진 듯 허성했다.

“이보시오. 저기 청풍도가 앞에 서있는 마소와 마차는 왜 저러고 있고, 도가 상전들은 왜 아직도 문을 열지 않고 있는 거요?”

최풍원이 그 연유를 물었다.

“그러니 천하의 호로 새끼들이지유!”

걸빵을 맨 사내가 대답했다.

“벌써 몇 장 째 저 지랄들 하고 있다우. 아마 점심나절이나 돼야 상전이 문을 열 것이오. 그것도 잠깐 하고 말꺼요!”

“왜 그러는거지요?”

“그거야 뻔한 일 아니오?”

“뭐가 뻔하다는 거요?”

걸빵을 맨 사내의 이야기는 이러했다. 봄이 오기 전부터 청풍장은 그렇게 장사를 해오고 있다는 것이었다. 풍년이 들어도 농민들 살림이 이리 뜯기고 저리 뜯기고 나면 끼니 때우는 일이 만만찮은 것은 어느 집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가뭄에 늦장마에 요 몇 년은 내리 피농을 하고나니 살아내는 것이 여간한 곤욕이 아니었다. 이미 바꿔먹을 물건들은 모두 내다 팔아 집안에 남아있는 것은 밥만 축내고 있는 식구들 입뿐이었다. 그렇다고 산 입에 거미줄 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살아있는 도막에는 어떻게 해서라도 목숨을 부지해야 했다. 사람들은 강으로 가 꽝꽝 얼은 얼음을 깨고 고기를 잡아먹으며 급한 허기를 메우기도 했다. 또 산을 뒤지며 돈이 될 만한 약초뿌리들을 캐서 장날마다 들고 나갔다. 다만 몇 끼라도 허기를 면하기 위해서였다. 하도 많은 사람들이 온 산을 빠대고 다니니 마을에서 가까운 산은 반들반들해지고, 이젠 먼 산까지 가야만 그나마 얼마라도 약초를 캐올 수 있었다. 그렇게 농민들은 죽을 지경인데도, 청풍도가 상전들은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애쓰는 농민들 등을 쳤다.

“아흔아홉 마지기 가진 부자가 백 마지기 채우겠다고 한 마지기 남의 땅을 빼앗는 놈보다도 더 드러운 놈들이오. 우리같이 못 사는 놈도 거렁뱅이가 빌어먹으러 오면 뭐라도 주려고 하는데, 저것들은 어떻게 생겨처먹은 인종들이 얻어 먹으러온 으드박지 쪽박까지 빼앗는 그런 날강도 같은 놈들이오!”

“말도 마시오! 난 지난 장에 완전 눈탱이를 맞고 갔다오. 평상시 같으면 쌀 한 말은 넉넉히 살 것이라고 생각하고 왔는데, 약초를 보더니 보리쌀 한 말도 어렵다는 거요. 그것도 내 물건은 헐값으로 떠넘기다시피 주고, 보리쌀은 택도 없는 비싼 금을 주고도 사정사정해서 겨우 샀다우!”

장에 나온 사람들은 청풍도가에 대한 불만이 상당했다.

청풍도가에서는 힘겨운 농민들의 약점을 역이용하는 것이었다. 춘궁기가 되면 집집마다 양식들이 떨어질 것이고, 언제까지나 굶고 살 수는 없는 일이었다. 가솔들 목숨을 연명하려면 어떻게든 양식을 구해야 했고, 봄이 되면 곡물을 찾는 농민들이 많아질 것을 알고 하는 짓거리였다. 집이나 마을에서는 아무리 애를 써도 돈이 될 만한 것들을 구할 수 없는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들 산으로 올라가 온 산을 헤집으며 약초들을 캤다. 그런 약초들을 장사꾼들이 어지간하게만 금을 쳐서 양식과 바꿔주어도 급한 허기를 메우는데 큰 도움이 됐을 것이었다. 그런데 그런 약초들을 헐값은 고사하고 똥값으로 매수하기 위해 곡물 값을 올렸다. 농민들이 당장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식량이었다. 청풍도가에서는 창고에 곡물 섬들을 그득하게 쌓아놓고도 풀지를 않았다. 청풍장의 상전들에게도 비슴으로 약간의 곡물들만 내놓으라고 기별을 했다.

거기에다 장날이 되도 일찍 문을 열지 못하도록 서로 담합을 했다. 또 소와 마차를 끌고 다니며 곡물 장사를 하는 장사꾼들 물건도 한꺼번에 사들여 장꾼들에게 직접 팔지 못하도록 했다. 곡물 값을 폭등시키려는 술책이었다. 약초를 팔려는 사람이 많으면 당연히 약초 값은 급락을 할 것이고 때를 맞춰 청풍도가에서는 중간 매수자들을 풀어 똥값으로 이를 사들이고, 농민 장꾼들은 양식을 구하려고 상전으로 몰릴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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