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원이가 장꾼들에게 넌지시 말했다.

“북진에 뭐가 있다고 그러오?”

“소금배라도 들어왔나벼.”

“이 사람이 겨우내 곡기를 거르더니 정신까지 왔다갔다 하는구먼. 강물이 풀린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소금배가 올라와.”

“그런데 뭔 장이 선다고 그러오?”

북진에 가서 물건을 팔고사라는 풍원이 말에 길가던 장꾼들이 저마다 한 소리씩 했다.

“북진에 뭔 본방이라는 게 생겼는데, 무슨 물건이든 가지고 가면 사시사철 사고 판다고 하더이다.”

“뭔 쓸다리 없는 소린 게요? 청풍도가도 무신날은 문을 닫는데 소금배나 올라와야 서너 날 뜬장이 서는 북진에 무슨 사철 장사요.”

최풍원의 말에 사람들은 무슨 쉰소리냐는 표정들이었다.

“글쎄, 한번들 가보시구려! 청풍도가보다 물건도 후하게 사주고, 곡식 됫박도 넉넉하게 준다고 하더이다.”

“사실이 그렇다면 우리는 굳이 강을 건너고 배나 먼 길을 걸어 청풍까지 갈 필요가 없지. 북진으로 가면 반은 길이 줄어들 텐데…….

황석나루를 건너 추산과 부산에서 온 장꾼들이 말했다.

“그리고 광의리에서 오는 장꾼들은 없으시우?”

“그건 왜 묻슈?”

“혹시 광의리 김길성을 아는 분 있우?”

“길성이는 내가 잘 아는데 왜 그러슈?”

체구보다 얼굴이 더 넙데데한 사내였다.

“내가 어제 북진에서 들으니, 그 양반이 광의리에다 무슨 임방을 차렸다고 그러던데…….”

최풍원이 사내에게 광의리 임방주 김길성의 근황을 슬쩍 물어보았다.

“맞소. 얼마 전 임방이라나 뭐라나 물건을 들여놓고 전방을 차렸소이다.”

“그래 잘 되는 것 같더이까?”

“잘 될 턱이 있소?”

“그게 무슨 말이우?”

“배꾸리에서 도랑물 흘러가는 소리가 들리는 사람들에게 뭔 소용대가리도 없는 것들이냐 이 말이오.” 

“그건 또 무슨 소리우?”

“그게 그렇잖소. 그런 것들은 입맛 없다고 까탈 부리는 양반님네나 등 뜨시고 뱃속 든든한 부자네들이나 먹을 물건이지, 먹을 게 없어 끼니도 못 챙기는 우리네 같은 것들한테 뭔 소용대가리요. 청풍장이라 해도 팔릴까 말까한 그런 물건을 광아리 촌구석에다 같다놓았으니 그게 장사가 되겠소이까?”

넙죽이 사내가 가당치도 않다는 표정을 지었다. 광의리 김길성 임방주가 북진본방에서 가져간 물산들은 거개가 어물이었다. 소금과 새우젓이 대부분이었고, 꽁치·고등어 같은 간절이 생선·멸치·새우·미역·김 같은 건어물을 주로 떼어갔었다. 어쨌든 이런 물건들은 부식이었다. 부식인 어물이 비싸기도 했지만, 주식도 해결되지 않는 판에 부식을 장만하는 정신 나간 사람을 없을 것이었다. 그런데 김길성 임방주가 동네 돌아가는 사정도 모르고 어물을 주로 가져간 이유를 최풍원으로서는 알 수 없었다. 장사가 구색도 갖춰야겠지만, 그래도 장사는 비슴이 아니라 쓰임새가 우선이었다.

“그럼 광의리에는 뭘 갖다놓으면 팔리겠수?”

“어물이야 안 먹어도 살지만, 곡물은 당장 먹어야 하지 않소. 우리가 식전부터 짐을 지고 청풍으로 가는 것은 이것들하고 먹을 식량거리를 바꾸려는 것 아니겠소? 만약 광아리에서 이것들을 사주거나 곡물로 바꿔주는 곳이 있다면 뭣 하러 생고생을 하겄소.”

“마을에 들어오는 행상하고 청풍장 상인하고 물건 값은 어떠하오?”

“당연히 청풍장이 나으니 가는 것 아니겄소.”

최풍원은 넙죽이 사내 말을 들으며 임방들도 전체적으로 점검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해가 갈수록 사람들 사는 형편이 점점 더 힘들어져 가고 있음을 알았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춘궁기라는 것이 있었다. 그때까지는 그래도 양식이 좀 남아있어 생배를 고스란히 굶는 경우는 없었다. 그런데 이제는 봄이라고는 해도 아직도 겨울 기운이 더 많이 남아있는 초봄인데도 벌써부터 이 마을 저 마을에서 배곯는 소리가 넘쳐났다. 한 해 한 해 나아져도 살아가기 팍팍한 처지에 나날이 힘겨워지기만 하니 사람들 움직임에서도 활기를 찾아볼 수 없었다.

들판 끝날 쯤 드문드문 민가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비봉산 아래 읍하리에서 내려오는 길과 광의리에서 올라가는 길이 만나는 지점에 청풍의 관문인 팔영루가 나타났다. 팔영루만 넘어서면 청풍 읍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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