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진에서 청풍읍성으로 가려면 강을 건너야했다. 강을 건너려면 북진에서 나루를 연결하는 나룻배가 있어야했다. 북진나루 지척에는 황석나루나 읍리나루도 있었지만, 사람들은 제천에서 금성을 거쳐 북진나루에서 배를 타고 청풍으로 들어가는 길을 많이 이용하였다. 최풍원은 당연히 북진나루에서 배를 타고 강을 건넜다. 강을 건넌 최풍원은 나귀를 끌고 청풍읍성을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 여기서 장터까지는 채 삼마장도 되지 않는 가까운 거리였지만 장으로 가는 마음이 예전과는 달랐다. 설레는 맘, 왠지 모를 불안한 맘이 한꺼번에 휩싸였다.

그도 그럴 것이 예전 청풍 한천장에서 남새장사를 할 때와 지금 청풍장으로 가는 마음이 사뭇 다르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북진본방 대주로서 청풍도가와 경쟁을 해야 할 상대였기 때문이었다. 더 엄밀하게 말하자면 아직은 청풍도가의 날카로운 시선을 피해 그들과 대거리를 할 수 있는 힘이 길러질 때까지 스스로 설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북진과 청풍이 상생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보다 더할 나위가 없겠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장사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시앗을 보면 길가 돌부처도 돌아앉는다는 말이 있지만, 장사꾼에 비하면 시앗싸움은 아주 점잖은 양반이었다. 자기들 상권을 침범하면 장사꾼은 독사처럼 상대를 물어죽일 수도 있었다. 장사는 먹고사는 문제고 생존의 문제였다. 세상에 자기도 배를 곯고 있는 판에 남 배를 채워주기 위해 자신의 밥그릇을 덜어줄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더구나 이들 장사꾼들은 거개가 지독히도 천대를 받으며 살아온 사람들이었다. 오죽하면 ‘살아서 이득 없고 죽어도 손해 없는 자’들이 하는 일이 봇짐장수나 등짐장수 같은 장사꾼이라 했겠는가. 이들이 허기에 지쳐 길가에 쓰러져 죽어간다 한들 누구 하나 들여다 볼 사람이 없을 정도로 극한에서 살아온 이들이 이들이었다. 한 번 밀리면 죽는다는 것을 몸으로 겪으며 살아온 이들이었다. 그런 장사꾼들이기에 장사꾼은 자기 영역에 들어와 해를 입힐 기미가 보이면 온몸을 던져 쫓아내려 하는 것이 몸에 밴 습성이었다. 이런 사람들이 모여 서로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상계가 청풍도가였다. 청풍도가는 인근에서 유일한 도가였다. 오래되어 기반도 단단했지만 청풍도가는 일대의 모든 향시에까지 영향을 미쳐 좌지우지하고 있었다. 그러니 아직 힘이 없는 북진 본방으로서는 눈치를 살피며 죽은 듯이 움츠리고 있는 것이 상책이었다. 최풍원 역시 아직은 아무 움직임도 내보이지 말고 청풍도가의 움직임과 한천장의 흐름을 살펴보며 맞설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우선이었다. 청풍읍으로 들어가고 있는 최풍원의 마음이 이래저래 심란하기만 했다.

비봉산을 보니 새순이 나기 전이라 지난겨울 산 빛 그대로이다. 아직은 농사가 시작되기도 전인 이른 봄이어서 읍으로 가는 길가 들판은 황량했다. 광의리에서 읍내로 가는 길에는 한천장을 보기위해 가는 사람들이 식전부터 붐볐다. 사내들은 등에다 지고 아낙들은 보퉁이를 머리에 이거나 손에 들고 바삐들 걸어갔다. 아마도 이 사람들은 대부분 광의리 쪽에서 올라오는 장꾼들로 보였다.

“광의리에서 오는 장꾼들이오?”

최풍원이 물었다.

“나는 황석에서 오는 길이고, 이 사람하고 저 사람은 후산과 부산에서 오는 사람이오.” 무리 중 한 사내가 가던 길을 가며 대답했다.

“후산과 부산은 새벽밥을 자시고 나섰겠소?”

황석이야 북진에서 강 하류로 한 참 거리도 되지 않았지만, 후산과 부산은 황석나루를 건너서도 잊고 걸어야 할 한참 거리였다. 거기에서 출발해 최풍원과 비슷하게 왔으니 배는 일찍 나섰을 것이었다.

“새벽처럼 나왔는데 발품 값이나 받을라나 모르겠구먼유.”

등에 걸빵을 짊어진 사내가 말했다.

“등에 진 것은 뭐유?”

“춘궁기에 장에 가져갈 게 뭐 있겠소. 겨우내 산에 올라 언 땅을 파 모아놓은 약촌데 보리쌀 됫박이나 팔라나 모르겠수다.”

걸빵을 진 사내가 연신 매달리는 짐을 추켜올렸다. “엔간히 빠데놨어야지 어지간히 깊이 들어가지 않으면 산에도 남아있는 것이 없소. 산이 집마당처럼 반들반들해요. 아마도 저 사람들 가져가는 보따리는 전수 산 것들일거요. 그러니 뭔 보리쌀 대박이라도 기대하겠소. 장사꾼들이 어떤 사람들인데, 약초 금을 더구나 흔한 것들 금을 제대로 쳐주겠소. 후려치지!”

처음에 대답을 했던 사내가 별 기대도 하지 않는다는 듯 남의 다리 긁듯 말했다.

“앞으로 광의리와 후산, 그리고 부산은 북진으로 물건을 가져가시오! 거기는 장날이 아니라도 언제든 아무 때나 와도 언제든 팔고 산다고 하더이다. 그리고 금도 후하게 쳐준다고 하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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