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영 건양대학교 군사경찰대학 교수

매년 11월 중순이 되면 남해 바다에는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 해전이었던 노량해전에 출정하는 우렁찬 북소리가 들려온다. 이순신 장군은 돌아가실 때가지 23전의 해전을 치르면서 한 번도 패한 적이 없는 불세출의 명장이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국가의 운명을 이어가는 것은 이렇듯 목숨을 아끼지 않고 국가를 지켜온 분들의 덕분이다.

특히 이순신장군의 나라사랑 정신은 세월이 가면 갈수록 더욱 빛을 발한다. 11월 19일 새벽에 일본의 요시히로 등이 이끄는 일본함대가 500여척의 함선에 수군 6만여 명이 몸을 싣고 노량해협으로 진입하게 된다. 왜군이 노량해협에 진입하자 매복해있던 조선과 명의 연합군과 왜군 간에 전투가 벌어졌는데 이순신 장군은 선제공격을 가했다. 양군이 근접한 상황에서의 전투였다. 왜선 200여 척이 근접전으로 부서지고 죽고 부상당한 자가 수천과 부서진 배의 나무판자 등이 바다를 뒤 덮었다. 적과의 혈전 끝에 왜군은 지탱하지 못하고 마침내 관음포로 도망가기 시작했다. 이 때 이순신 장군은 왜선을 추격하라 지시하고 앞장서게 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추격 간 이순신 장군은 도망가던 왜군의 총탄에 총탄을 맞게 된다. 이순신 장군을 두려워했던 왜군들이 이순신 장군이 쓰러졌다는 소식을 알게 되면 분명 다시 선수를 돌려 반격을 시도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순신 장군은 총탄을 맞은 고통 속에서도 즉각 부하에게 방패로 자신의 신체를 가리게 하고 곡소리를 내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 “싸움이 급하니 내가 죽었다는 말을 하지 말라”라는 유언을 남기셨다.

노량해전에서의 아군 전력은 적선 200여척을 침몰시키고, 150여척 파손, 100여척을 나포하는 큰 전과를 거두었다. 그야말로 놀라운 대승이었다. 500여척 왜함선 중 도망간 함선은 50척 정도에 불과했다. 여기서 열세한 전력을 가지고 기적 같은 대승을 거둔 것도 놀라운 일이다. 하지만 그보다도 이순신 장군께서 죽음의 고통 속에서도 자신을 돌보지 않고 오직 조국을 위한 마음만으로 임하신 모습이 더욱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한다. 이순신 장군은 노량해전의 개전날인 11월 18일 밤에 “이 원수만 무찌른다면 죽어도 한이 없습니다”라고 하늘에 빌고 전투태세에 들어갔다고 한다. 전장에서 죽기를 각오하신 듯하다.

이순신 장군의 죽음은 오늘 날을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무언의 교훈을 던져주고 있다. 국가나 남이야 어찌됐던 자신만의 출세를 지향하며 정신없이 내달리는 우리들에게 강한 경각심을 던져주고 있다. 또 다시 11월이 다가왔다. 한해를 마무리해야 하는 시점에서 내달리던 걸음을 잠시 멈추고 남해에서 바람을 타고 들려오는 노량해전의 북소리를 조용하게 기울여 들어보자. 오직 나라만을 구하기 위해 죽기까지 피를 토하며 부하들을 독려하며 결전을 벌이시던 이순신 장군의 모습을 그려보자.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없었다면 조선은 망했을 것이고 일본의 속국이 되었을 것이라는 점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순신 장군의 의연한 죽음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조용히 생각해 볼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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