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해피마인드 아동가족 상담센터 소장

책 읽는 청주의 대표 도서인 ‘82년생 김지영’를 읽었다. 세상의 절반인 여성들의 이야기로, 페미니즘을 대표하는 소설이라기에 나는 궁금했다. 책은 A4 반장 크기에 200쪽이 안 되는 분량의 짧은 소설이었다. 한번 손에 잡은 책은 내려놓을 수 없을 만큼 공감을 부르는 소설이었고,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서는 깊은 한숨이 저절로 터져 나왔다. 그리고 오랫동안 심란한 마음으로 일상을 마주해야 했다.

소설 속 김지영은 82년생이다. 삼십 대 중반의 김지영이란 여자 주인공이 여성의 몸으로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일상을 촘촘히 그린 소설이다. 또한, 소설은 사회적으로 쟁점이 됐던 사건이나 현상들을 다루고 있기에 다큐멘터리 영화 같기도 하다.

소설을 읽으며 놀라운 것은 주인공인 30대의 김지영이 경험하는 세상과 60년생인 오십 대의 내가 경험했던 세상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우리 어머니가 살아낸 세상과 내가 살아온 세상, 그리고 우리 딸들이 살아갈 세상이 소설처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나를 우울하게 했다. 동시에 우리 사회가 얼마나 견고한 남성 중심사회인가를 알 수 있었다.

누군가는 말한다. 여자들이 얼마나 살기 편한 세상이 됐는지를. 밥은 밥솥이, 빨래는 세탁기가, 청소는 인공지능 로봇청소기가, 아이들은 어린이집에서 다 키워주는데 무엇이 그리 힘들다며 징징거리냐고. 그들은 묵묵히 견뎌낸 자신들의 어머니들의 노동을 그렇게 지금의 아내에게 여자 친구에게 기준점 삼아 말하곤 한다. 그리고 젊은 여성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불편하다고 한다. 시끄럽다고 한다. 급한 것은 그것이 아니라 가족의 화목이고, 조금만 더 참으면 알아서 해준다고 한다.

과거의 어머니들에 비교하면, 지금의 세상은 너무도 변화한 게 사실이다.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달라졌다. 가사노동을 보조해줄 수 있는 가전제품은 첨단을 달리고 있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여성들의 임금은 남성들의 임금 보다 현저히 낮으며, 가사노동과 육아는 여전히 여성들의 몫이며, 여성들의 가족에 대한 헌신과 봉사와 모성애는 여성의 최고의 미덕으로 칭송되는 사회 문화 속에서 여성은 끊임없이 무언의 압력을 느끼며 살고 가고 있다.

여성은 엄마가 되는 순간부터 여성은 사회로부터 지독하게 고립된다. 여성의 임신과 출산에는 관심을 보이지만 아이를 양육하는 것은 백 프로 엄마의 몫이다. 개인은 사라지고 누구누구 엄마로만 남게 된다. 엄마인 개인의 욕구는 철저히 무시된다. 오로지 아이들과 관련된 것만 허락된다. 아이들을 매개로 시간도 돈도 정보도 새롭게 맺어야 하는 관계로 재편된다.

소설 속에서 1천500원짜리 커피 한잔을 공원에서 마시고 있는 김지영에게 ‘맘충’이라고 한다.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여유롭게 커피나 마시는 기생 벌레라는 것이다. 김지영의 곁에는 유모차에서 아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돌보는 것은 놀이처럼 한가로운 일도 전제된다. 타인에 대한 돌봄 노동의 인식개선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많은 여성이 82년 김지영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82년생 김지영’은 이 시대를 사는 여성들의 공통 이름인지도 모른다. 나도 너도 김지영인 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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