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을 실행에 옮기려면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다. 세상에서 가장 버리기 힘든 욕심이 있다면 그것은 돈 욕심일 것이었다. 과연 돈을 마다할 사람이 이 세상에 한 명이라도 있을까. 더구나 자기 돈이라면 더 말할 나위도 없었다. 몸이 고달파서 그렇지 이제부터는 장사만 나가면 돈은 화수분처럼 들어왔다. 그동안 갖은 고생을 다해 터를 다진 끝에 이제 재미를 보게 된 일을 중도에 포기한다는 것은 그래서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매일처럼 일에 치여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알 수도 없을 정도로 떠밀려가며 살 수는 더더욱 없었다. 결국 결단을 내려야 할 시기가 온 것이었다. 세상 돈을 모두 혼자만 독식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고민과 갈등을 거듭한 끝에 최풍원은 결심을 했다.

최풍원은 지금까지 해오던 행상을 접고 다른 장사로 방법을 바꿔야겠다고 마음을 굳혔다. 결심이 서자 최풍원은 몇 년 동안 고생해서 다녀놓은 장사 기반을 일시에 끊어버렸다. 그렇게 단칼에 잘라버리지 않으면 그 속에 빠져 평생 벗어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러나 완전히 버린 것은 아니었다. 그동안 행상을 하며 익혔던 장사 기술을 사람들에게 전해줄 생각이었다. 행상을 계속하면 부자로 살 수는 있었겠지만, 거부는 될 수 없었다. 거부가 되려면 통 큰 장사를 해야 했다.

그래서 북진본방을 만들고, 청풍 인근 마을마다 임방을 두어 임방주들로 하여금 일상에 쓰이는 소소한 물건들은 그곳에서 팔도록 했다. 최풍원이 임방을 둔 목적은 또 있었다. 이제 임방이 문을 열고 본격적으로 장사를 시작하게 되면 행상들이나 장꾼들이 그곳에 드나들며 어울리게 될 것이었다. 장사는 정보였다. 장사는 물건을 사고 파는 것이 아니라 어찌 보면 정보를 사고 파는 것이었다. 장사치는 물건을 파는데 급급하지만 큰 장사꾼은 정보를 얻는데 더 골몰했다. 물건을 팔면 잔돈을 벌겠지만 정보를 팔면 거금을 벌 수 있었다. 최풍원이 곳곳에 임방을 둔 주된 목적은 거기에 있었다. 임방에 드나드는 사람들은 사방에서 물어온 소리를 거기에서 쏟아낼 것이었다. 일테면 요즘 철에는 어느 동네에서는 어떤 물산들이 지천으로 나오고, 어떤 동네에서는 어떤 물건들이 딸리고, 어떤 동네에서는 뭐가 싸고, 어떤 동네에서는 뭐가 비싸다는 둥 이런 입소리들이었다. 이런 소문이 돈이 된다는 것을 최풍원은 행상을 다니며 사람들 이야기를 들으며 자연스럽게 깨쳤다. 최풍원은 임방을 통해 들은 이런 정보들을 이용해 큰 장마당이나 산지를 돌며 그곳에 나온 특산품이나 농산물들을 도거리 할 작정이었다. 그리고 임방마다 만들어놓은 집산소에 도거리한 물산들을 보관해 놓을 요량이었다.

그러나 모든 것이 마음먹은 대로만 이루어진다면 걱정할 필요가 뭐가 있겠는가. 더구나 이제 막 시작한 북진본방이 제대로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아직도 갖추어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았다. 그래서 불안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불안은 청풍도가의 태도였다. 인근에서 가장 큰 장이 청풍읍장인 한천장이었다. 그런 한천장의 주도권을 쥐고 청풍 관내는 물론 그 언저리의 서는 모든 장에 직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곳이 청풍도가였다. 최풍원이 북진에 자리를 잡은 것은 무엇보다도 청풍도가의 텃세를 피하기 위함이 우선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횡포에도 흔들리지 않을 때까지 상권를 키워 스스로 일어서기 위해서였다. 그러려면 북진본방과 여덟 개 임방이 차돌처럼 단단하게 결속하여 청풍도가의 한천장과 대거리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상권을 하루빨리 구축해야했다.

그 길이 아직은 멀리 보였지만, 결코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최풍원은 생각했다. 만약 북진에서도 일정한 소비처만 확보된다면 청풍도가처럼 활발한 상권을 형성할 수 있었다. 북진이 청풍 읍내에 비해 상권을 갖추기에는 여러 가지로 불리한 조건을 지니고 있는 것은 분명했다. 그래도 넓은 포구를 가지고 있어 나루터만 제대로 정비하면 많은 물건들을 한꺼번에 부리는 데는 청풍 읍진나루보다 훨씬 유리했다. 문제는 물산을 소비할 수요자들이었다. 그런 수요자들만 있다면 행상과 장꾼들은 당연히 모여들 것이었다. 북진본방의 앞에서 물건들을 소비할 수요자를 늘리는 것이 임방들이 막중한 책임이었다. 이제 막 시작한 북진본방의 임방에 비하면 청풍도가의 전들은 웬만한 돌개바람에도 흔들리지 않을 정도로 그 지역에 단단한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앞으로 둘 사이에는 수시로 부딪치고 충돌이 일어날 것은 불 보듯 뻔했다. 이제껏 혼자 잘해먹고 있던 자기들 상권에 누군가가 갑자기 치고 들어와 장사를 벌인다면 성자라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었다. 그럴 상황에 대비해 북진본방에서 임방들의 바람막이 역할을 해주고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려면 무엇보다도 최풍원 대주의 역할이 정말로 중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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