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주, 우리 물건은 내려야하지 않을까?”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며 배가 정박해 있는 나루터에 다다랐을 때 북진임방 장순갑이 끼어들었다.

“그래야지요. 형님 물건만 배에서 내리고 나머지는 그대로 싣고 가야지요. 어르신 형님 짐만 나루에 내려 주셔요!”

최풍원이 우갑 노인에게 장순갑의 임방으로 갈 물건만 배에서 내려달라고 했다. 북진 임방의 물건은 본방 곁에 함께 있으니 굳이 싣고 갈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다.

“어르신께서 나루에 짐을 부려주시거든 행수님들은 떠들썩거리며 티내지 말고 조용하게 임방까지 물건들을 옮겨가기 바라오. 아직은 청풍도가에서 눈치 채지 못하도록 하는 게 좋을 듯싶습니다. 전에 물건도 깔기 전 놈들이 방훼를 놓을까 그게 염려되어 그러는 것이니 각별히 신경 써서 옮겨 주시오!”

북진나루에 정박 중인 지토선에 오르는 임방주들에게 최풍원 대주가 당부했다.

아직은 매사에 조심을 하는 것이 상책이었다. 이제 막 장사를 시작하는 마당에 청풍도가에서 눈치라도 채고 해코지라도 하려고 달라들면 북진본방으로서는 아무런 대책이 서있지 못했다. 청풍 인근의 여덟 개 임방 모두에 북진본방의 물건이 깔리고 본격적으로 장사를 시작할 때가지는 살얼음판을 걷듯 그저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대주는 걱정 마시오!”

“배에 실린 물건만 봐도 배가 부르오이다!

“우린 장사만 하면 될 일이고, 본방 대주는 돈만 거둬들이면 될 일인데 뭔 걱정이 그리도 많으시오!

임방주들은 모두들 상기된 표정들이었다.

“알겠소! 난 임방주들만 믿을 테니, 우리 한 번 똘똘 뭉쳐 잘 해봅시다!”

북진본방 최풍원 대주가 지토선에 탄 임방주들을 향해 손을 흔들며 결의를 다졌다. 지토선이 북진나루를 떠나 어은탄을 거슬러 청풍 읍진나루를 향해 올라갔다.

최풍원도 본격적으로 도거리 장사할 준비를 했다. 물건을 파는 장사가 아니라 물건을 사는 것이 주였다. 이제까지는 윤 객주 상전으로부터 받은 물건을 장석이와 지고 마을로 돌아다니며 그 지역에서 나는 산물들과 맞바꾸는 장사를 해왔다. 지고 간 소금 한 섬을 팔면 돌아올 때는 몇 섬의 곡물로 부피가 늘어났다. 그것들을 등짐으로 져서 북진으로 모아두었다가 한꺼번에 충주 윤 객주 상전으로 져서 옮겼다. 윤 객주 상전에서는 최풍원에게 대어주었던 물건 값을 제하고 남은 이익금은 엽전으로 지불해주었다. 풍원이는 그렇게 벌어들인 엽전을 땅에 묻어놓은 독 속에 보관했다. 장사로 번 돈을 어지간해서는 꺼내 쓰지 않겠다는 의도도 있었지만, 그렇게 차곡차곡 모아두었다가 목돈을 만들어 나중에 큰 장사를 할 때 밑천으로 삼기 위해서였다.

최풍원은 언제든 빈손으로 다니는 법이 없었다. 게다가 타고난 부지런함으로 한시도 쉬는 법이 없었다. 언제든 그의 손이나 등에는 물건이 있었다. 그리고는 그것을 필요한 사람에게 처분을 하고 돌아왔다. 발품을 팔아 모아두었던 물산들을 충주 윤 객주 상전으로 넘기고, 돌아올 때도 북진이나 청풍 근방에서는 구할 수 없는 것들을 지고 와 곱절의 이문을 붙여 팔았다. 그리고 한 푼이라도 더 이득을 남기기 위해 북진에서 멀리 떨어진 산골짜기까지 물건들을 지고 가 헐값인 산지의 물산들과 물물교환을 했다. 그러니 한 번만 왕복을 해도 서너 곱절을 남길 수 있었다.

낙수가 댓돌에 구멍을 내듯 뭐든 부지런하고 근하게 하면 늘고 불어나는 것이 세상 이치였다. 그렇게 장사를 하다 보니 소문이 나 단골도 늘어나고 사방 곳곳에서 풍원이 물건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처음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늘어났다. 장사가 잘 될수록 지고가 팔아야 할 물건들은 엄청 늘어났고 팔고 받은 산물들은 두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넘고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장사규모가 커지고 물량이 늘어나자 이제까지 해왔던 등짐으로는 감당할 수가 없었다. 최풍원은 그런 장사를 언제까지나 계속할 수는 없었다. 일꾼을 써서 부족한 부분을 메울 수는 있었겠지만 그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확신이 들었다. 세상에는 사람도 많고, 그만큼 필요로 하는 물건도 많고,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늘어날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고 세상일을 최풍원 혼자 모두 감당할 수 없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세상에 돈을 마다할 사람은 없겠지만, 그렇다고 돈을 모두 혼자 벌수는 없는 일이었다. 거개의 사람들에게 지금 잘되고 있는 일을 포기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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