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청주민예총 사무국장

지난 금요일 문화체육관광부를 중심으로 각 시도 문화예술계가 함께 진행하는 ‘문화정책포럼’이 청주에서 열렸다. 정책, 사람, 공간, 복지 등 몇개의 세션테이블을 마련하고 지역문화예술관계자들이 마주 앉아 자유로운 이야기를 나누었다.

최근 레저스포츠 분야에서 부동의 1위를 차지하던 등산이 낚시에 밀렸다고 한다. 동호회 수만 해도 상상을 초월한다. 문화예술분야에도 많은 동아리가 존재하지만, 명함도 내밀지 못한다. 경제가 좋아지고 고령화 사회가 됐다지만, 여가 생활로 문화예술을 선택하는 이는 많지 않다. 그만큼 예술은 고독하다.

최근 문화소외지역을 찾아가는 공연이 늘고 있다. 가요에서부터 클래식까지 많은 분야에서 활동한다. 과연 그들은 문화소외지역 시민이라 생각할까. 그리고 찾아오는 공연을 기다리며 보고 싶어 할까. 예술을 통해 시민이 행복하고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정책은 필요하다. 그러나 문화소외지역을 돌아보기 이전에 문화소외예술인부터 챙겨야 옳지 않겠는가. 환영받으며 찾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지역에서 활동하는 모든 예술가는 문화소외예술인이다.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고 인기가 없다. 열심히 고뇌하고 연습하고 창작하여 공연을 올리면 관객이 없다. 관객이 없는 공연은 실패한 공연, 지원금이 아까운 공연이 되고 만다. 지역축제 개·폐막식에 지역 예술가가 무대에 서지 못하고 연예인을 초청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생존을 위한 투쟁 속에서 예술가는 대중성과 예술성이라는 두 길 위에 서 있다. 각종 기금 사업은 관객이 얼마나 왔는가의 결과에 초점을 맞춘다. 과정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니 문화예술계 기금 서류가 건설업이나 제조업 서류와 같은 이유이다. 그러나 예술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 중요하다. 예술은 예술가의 예술적 창작 과정 속에서 꽃이 피는 것이다. 진정한 예술은 동시대에 꽃피기 어렵다. 문화예술정책이 새롭게 바뀌려면 문화예술의 결과가 아닌 과정에 투자해야 한다. 예술인의 예술창작의 자율성을 보장하고 결과에 대해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 문제는 예술가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몇 년 동호회에서 기능을 익히고 예술가로 진출하는 이들이 너무 많아졌다. 예술을 즐기고 향유하는 사람이 많아진다는 것은 좋은 현상이지만, 경계해야 할 일들도 많아진다. 어렵게 활동하는 예술인을 위해 창작지원금을 지급하는 제도도 있다. 일단 복잡하다. 내가 어렵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고 증명해야 한다. 어부지리 약삭빠른 이들의 몫이다.

지역에도 스타 예술인을 만들 필요가 있다. 스타란 대중적으로 알려져야 하는데, 방법은 TV에 자주 나오는 것이다. 열악한 지역방송이 수익성 없는 지역 예술가를 위해 투자할 리 만무하니 정책적이 필요하다. 대중성이 아닌 예술성에 초점을 맞춘 지역 예술가를 보여주는 황금시간대에 방영되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다. 지역민으로부터 소외당하고 있는 지역예술인들의 고독한 창작 과정에 정책적 지원이 뒤따른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꿈인 듯 꿈처럼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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