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충주농고 교장·수필가

성인이 된 자식이 늙은 부모를 부양하는 효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도리요 가족 윤리의 근간을 이루는 덕목이다. 그렇기에 우리의 부모 역시 대물림의 의무로 이여 왔고 만일 그렇지 못할 경우 불효라는 꼬리표가 붙어 사람대접을 받지 못했다.

현대사회는 천륜이라 할 효의 정신이 급변하는 사회문화에 흔들리고 변해가고 있다. 유교풍의 가부장적 권위주위를 탈피하고 상호존중과 배려로, 남녀노소가 공존 화합하는 삶의 시대로 가야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노부모를 부양하는 의무도 사회복지의 공공의 개념으로 크게 작용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효의 정신이 변할 수밖에 없는 사회적 현실을 살펴보면 첫째, 저 출산 고령화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모두가 저성장에 서오는 경제 불황과 사회갈등에 원인이 있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하고 있다.

둘째, 우리나라 경제활동 인구의 20% 이상을 차지하는 베이비붐세대1.)의 준비 없는 은퇴가 닥아 오고 있다. 문제는 우리사회가 지금 이들의 은퇴를 뒷받침할 상황이 아니라는데 있다. 저성장의 지속, 조세 수입 감소, 막대한 사회보장비용의 지출 등 엄청난 파장이 예상된다는데 있다. 베이비붐세대에게는 노부모 봉양과 취업 못한 자식까지 부양해야 되는 쎈드위치의 절박한 상태에서 자신의 노후에 빨간 불이 켜지고 미래가 불안하다는 것이다.

셋째 부모부양이 천륜이라던 효에 조건이 붙기 시작했다. 그것이 효도계약서의 등장이다. 2009년 195건이던 부양심판건수가 지난해 270건으로 증가했다. 부양문제가 소송으로 가는 사례가 드물다는 측면에서 가파른 증가추세다. 이 효도계약서의 등장은 노후를 보장받기위한 불가피한 일이지만 갈등과 불신으로 흔들리는 이 시대가정의 단면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고액자산가 위주로 이루어지던 것이 집하나 지키고 사는 빈곤층 노인에까지 그 범위가 커져가는 현실에 서글픔마저 든다.

그러면 우리 요양원의 실태는 어떠할까. 장기요양시설은 많아도 A급 판정을 받은 곳은 15%에 불과하고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운영하는 공공요양원은 시설 서비스가 좋아 초만원이다. 사설요양원, 실버타운은 부익부 빈익빈의 현실그대로다. 노후 준비 없는 빈곤층노인에겐 그림의 떡이다. 복지재정을 확충해서라도 공공 요양시설을 대폭 늘려야 할 필요성이 존재한다.

이제 우리는 효, 불효를 말하기 전에 120세 시대에 걸맞은 부양 방식을 준비하는 것이 급하다. 셀프부양은 혼자의 힘으로 살아남을 이야기도 아니다. 사회와 국가의 힘이 보태져야만 가능하다. 120세 시대에 맞게 노인의 기준도 재조정 되어야 하고 현대판 ‘고려장’ 논란에서 볼 수 있듯이 급증하는 노인인구를 감당하지 못하면 우리노인들은 어쩔 수 없이 부담스러운 존재로 처량한 노후를 살아야한다. 노인을 학대하고 경시하는 풍조는 국가사회의 도덕적 불행이요 재앙이 될 수도 있다.

초고령화 사회를 눈앞에 둔 시점에서 국가가, 부모를, 나를, 자녀를, 돌봐주는 따듯한 사회를 꿈꿔보아야 한다. 우리 모두 힘을 모아 걱정 없이 남은 여생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나가야한다. 노년이 누구에게도 부담이 되지 않는 사회! 이것이야말로 120세 시대를 살아보고 싶은 孝의 未來가 아닐까.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