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 신덕기 임방주가 물었다.

“장사를 하고도 버는 게 없다면 차라리 산에 가서 약초를 캐는 게 더 실속 있는 것 아니오?”

학현리 배창령 임방주도 그것이 의문이었다.

일을 해도 품값을 받지 못한다면, 그저 노는 게 낫지 일할 필요가 없었다. 장사꾼이 장사를 했는데 물건만 팔고 자신에게 돌아오는 이득이 없다면 하등 장사를 할 이유가 없었다. 북진본방에서 선돈을 받지 않고 물건을 대준다고 하다니 그것을 미끼로 이득을 가로채려 하는 것은 아닌지 슬그머니 의심이 들기도 했다. 신덕기와 배창령 임방주가 물었지만, 말만 꺼내지 못했을 뿐  그런 의문이 들기는 다른 임방주들도 마찬가지였다.

“일단 본방으로 물산들이 모아지면 여기서 선별을 할 것이오. 종류별로, 품질별로 나누고 우선 청풍과 인근에서 팔 물산들은 여기서 처분하고, 나머지 물건들이나 청풍보다 더 좋은 금을 받을 수 있는 물산은 충주 윤 객주 상전으로 싣고가 처분하겠소. 이렇게 처분해서 나온 돈은 본래 대줬던 물건 값을 제하고 본방과 임방과 똑같이 반씩 나눌 것이오!”

“그럼, 여덟 개 임방 모두 똑같이 이득을 분배한다는 말이오?” 

장순갑 임방주가 물었다. 장순갑은 역시 이문에 민감했다.

“형님, 그건 그렇지 않소! 어떻게 장사하는 물목이 다르고, 사는 물산이 다르고, 질도 다르고, 양도 다르고 모든 게 다른 데 이문을 공히 나눌 수 있겠수. 본방에서는 각 임방으로 나가는 물목과 양, 그리고 각 임방에서 들어오는 물산의 양과 질을 모두 기록해두었다가 거기에 맞춰 셈을 할 것이오! 그럼 물건 수급문제와 이득금 분배 문제도 논의를 했으니, 다음은 서로 간에 지켜야 할 규약 같은 것을 논의합시다.”

“장사꾼이 장사만 열심히 하면 되지 뭔 규약이 필요하오?”

교리 신덕기 임방주가 시큰둥하게 물었다.

“교리 임방주는 장사가 처음이니 그리 말하겠지만, 동네 계를 모아도 규칙이 필요한데 하물며 청풍 근방 장사꾼들이 모여 북진본방을 만들어 큰일을 하려는데 당연히 규약이 필요하지요. 여러 임방주님들 그렇지 않은가요?”

연론리 박한달이 여러 임방주에게 동의를 구했다.

“그렇소!”

“옳소!”

“그렇게 합시다!”

다른 임방주들도 이구동성으로 동의했다.

“여러 임방주들께서 동의를 했으니 발언을 이어가겠습니다. 우리 장사꾼들은 타고난 천성부터 불우하고 서글퍼 우리끼리 합심해야만 우리 처지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아니면 누가 우리 같은 불쌍한 인생을 안타까이 여기고 보살펴주겠소이까.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서로 간에 신의를 쌓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서로 간에 이것만은 꼭 지켰으면 좋겠다는 안이 있으면 말씀 해보시기 바라오!”

최풍원 대주는 발언을 하면서도 예전의 일이 떠올랐다. 풍원이가 김주태네 집에서 머슴살이를 하다 그 아버지 김 참봉에게 보연이를 빼앗기고 나와 청풍 읍장에서 남새전을 했을 때였다. 채마를 팔며 조금씩 장사를 늘려나가다 곡물까지 손을 댔다가 장터 곡물전 상인들로부터 남의 밥그릇가지 빼앗는다며 원성을 샀던 일이었다. 결국 그 일로 채마전을 처분하고 충주 윤 객주 상전으로 가게 됐지만, 지금도 그 기억이 떠오르면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만약 그때 그런 일이 없어 계속 청풍읍장에서 채마전을 계속 했더라면 지금쯤 보연이를 김 참봉으로부터 데리고 나와 함께 살 수 있었을까.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최풍원 대주의 가슴 속에서 찌르르한 아림이 스쳐갔다.

“본방 대주! 먼저 우리 임방들끼리 상권을 침범하지 않았으면 하오. 내가 장사를 하며 가장 속상했을 때가 언제였을까 하고 생각해보니, 내 손님을 가로채가거나 내 구역에 들어와 내 물건과 같은 물건을 팔고 있을 때가 그렇지 않았나 하오. 다른 장돌뱅이들이 그러는 것이야 어쩔 수 없겠지만, 우리 임방주들끼리는 안 그랬으면 좋겠소이다. 거기서 사움이 나고 의가 상하는 것 같더이다.”

김길성 임방주가 먼저 의견을 내놓았다.

“제 물건 팔아먹으려고 똑같은 물건을 상대보다 싸게 내놔 손님을 빼앗아가는 일은 우리끼리 하지 맙시다!”

박한달 임방주도 의견을 내놓았다.

“우리들 처지가 모두들 그러들 하니 어려울 때 서로들 조금씩 부조를 해서 힘을 보태주면 힘이 되지 않을까 하외다.”

김상만 임방주도 의견을 내놓았다.

“여러 임방주들께서 내놓은 의견들을 조합하여 규약을 만들고 북진본방 안에 상조회를 하나 만드는 것은 어떨까 합니다만.

복선근 임방주가 의견을 또 다른 조직 하나를 따로 만들자고 제안했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