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인 교수의 풍수칼럼] 인물의 고장, 홍성의 풍수지리
[김정인 교수의 풍수칼럼] 인물의 고장, 홍성의 풍수지리
  • 충청매일
  • 승인 2017.10.26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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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대 경영학과

조선 후기의 실학자 이중환은 그의 저서 택리지에서 충청도에서 내포가 가장 좋은 곳이라고 하였다, 내포(內浦)란 바다가 안으로 깊숙이 들어와 있는 가야산 앞뒤에 있는 예산 당진 서산 홍성지역의 10고을을 말한다. 서쪽으로는 태안반도가 있어 바닷물이 깊숙이 들어오고 북쪽으로는 삽교천이 북류하면서 아산만이 깊숙이 들어온다.

이곳은 땅이 기름지고 평평하면서 넓고 소금과 물고기가 많아서 대를 이어 사는 사대부가들이 많다고 하였다. 또한 이곳에서는 훌륭한 인물들이 많이 났는데 그 중에서도 홍성은 충절의 인물이 많이 나와 역사인물축제를 매년 개최하고 있다.

홍성은 고려시대에는 운주라고 하였고 조선시대에 홍주라고 하였는데 결성군과 합쳐지면서 홍성이라고 개칭되었다. 홍성에서는 옛 지명인 내포와 홍주를 선호하여 내포문화중심도시, 홍주천년길 등 역사적 지명과 역사적 인물들을 통하여 홍성을 알리고 홍성의 발전을 꽤하려는 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다.

홍성을 풍수적으로 보면 북쪽으로 용봉산(374m), 동쪽으로 봉수산(484m), 남쪽으로 오서산(790m), 서쪽으로 백월산(394m) 등 4개의 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져 있다. 용봉산은 산의 모습이 용의 몸뚱이에 봉황의 머리모양이라고 하여 용봉산이라고 하였다.

산에 사는 짐승과 새는 봉황이 지배하고 산 아래 물고기를 비롯한 모든 것들은 용의 지배를 받는다. 그래서 임금을 용상이라고도 하고 봉황으로 임금을 상징한다. 용봉산에는 병풍바위, 장군바위, 촛대바위, 어머니 바위, 삼형제바위, 의자바위 등 여러 모양들의 기암괴석들이 많다. 용봉산을 낀 홍성 일대에서 고려의 명장 최영장군(1316~1388), 불의에 항거하여 굳건한 절개를 지킨 사육신 성삼문(1418~1456), 청산리 전투의 승전보를 울린 김좌진장군(1889~1930), 일제에 항거한 33인 중 한명인 한용운선사(1879~1944), 현대미술가 이응로 화백(1904~1989) 등이 배출되었다.

이에 홍성에서는 역사적 인물을 만나고 알아가는 역사인물축제를 매년 개최하고 있다.

홍성의 역사적 인물 중 특별히 관심이 가는 인물은 고려를 마지막까지 지킨 최영장군과 단종을 지키려다 죽은 사육신 성삼문이다.

최영장군과 성삼문선생은 홍성군 홍북면 노은리라는 마을에서 약 100년의 시차를 두고 태어났다고 하는데 현지에 구전하여 전하여 내려오는 이야기로는 같은 집에서 태어났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생가지에 대한 정확한 기록이 없어 최영장군의 출생지는 최장군 유허비 내용에 의하면 홍주 적동(현재 홍성군 홍북면 노은리)에서 태어났다고 기록되어 있고, 성삼문은 성삼문선생 유허비에 홍북면 노은리 상리부락에서 태어났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노은리에는 성삼문의 외손 엄찬고택이 있는데 이곳이 최영과 성삼문이 태어난 곳이란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홍성은 동으로는 예산, 서로는 당진 서산 태안으로 이어지며, 남으로는 보령 등 아산만이 깊숙이 들어오는 내포지방의 중심부에 위치한다.

사람이 살만한 곳은 산과 물이 잘 어우러지는 곳인데 홍성이 그러한 곳이다. 홍성에서 시작한 역사인물축제가 내포지방 전체로도 확산되어 위인들의 삶을 배우며 그 사상이 넓혀져 인물의 고장, 홍성의 전통이 계속 이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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