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 시인 충북예술고 교사

사람이 사람이 아닌 겨레를 사랑할 때 가장 완벽한 상태는 어떤 모습이 될까? 이런 의문을 혼자서 던져보다가 백범일지를 읽으면서 가슴이 뜨거워졌던 기억이 있습니다. 나라가 백성에게 준 것은 하나도 없는데, 그런 가운데서도 나라를 위해서 온몸을 바치고 마침내 나라의 기둥으로 선 한 사람의 삶이 고스란히 살아나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 책이 바로 이 책입니다.

민족하면 민족주의가 떠오르고, 또 저절로 국수주의에 연결됩니다. 민족주의는 같은 겨레끼리 잘 살아보자는 취지여서 반드시 그 주변 나라를 불편하게 합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가 민족주의에서 떠올릴 수 있는 장면들은 정권의 실세를 정당화시켜준다든가 만주는 우리 땅이니 내놓으라는 주장, 그리고 독도를 넘보지 말라는 항변 같은 것들입니다. 내부의 결속보다는 외부를 의식한 과잉행동이 언제나 떠오릅니다. 그래서 정말 진지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은 민족에 머물지 않습니다. 그 너머 인류의 보편성을 생각하게 되죠.

그런 점에서 백범 김구 선생은 참 순진한 사람이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순수함과 순진함이 때로 큰 힘을 발휘할 때가 있습니다. 바로 백범 김구 선생이 살던 시대였습니다. 나라는 백성들을 내팽개치고, 백성들은 외세에 짓눌려 어쩌지 못할 때 스스로 떨쳐 일어나서 지배층과 외세를 동시에 내쫓자고 외치는 목소리에는 바로 백성들이 뭉쳐야 한다는 강한 믿음이 깔려있고, 그때 가장 강한 융합효소로 작용하는 것이 한 겨레, 한 가족 개념입니다. 바로 그 개념에 가장 적절한 시대를 살다가 그 과정을 고스란히 오늘날의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 김구 선생입니다.

실제로 조선에서 대한제국으로 이어지는 낡은 왕조는 외세의 침입에 대항할 힘을 잃고 동학혁명 때 일본군과 청나라 군사를 동원해 자신의 백성인 그들을 제압할 생각을 하고, 실제로 청일전쟁 끝에 일본군이 토벌의 주도권을 쥡니다. 이쯤 되면 나라가 무엇인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상황이 되죠. 결국 그 뒤에 조선은 망하는데, 일본군에게 토벌단한 동학 세력은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세우는 일에 적극 나섭니다. 그 과정을 또렷이 보여주는 것이 김구 선생의 행적입니다. 김구 선생의 민족주의 사상은 이런 과정에서 몸으로 만들어낸 생각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일제가 망하고 대한민국이 들어서기까지 우리 민족의 독립운동을 이끄는 가장 강한 믿음이 됩니다. 그리고 남북이 분단된 이 시점에서 아직까지도 우리의 마음을 강하게 움직이는 친근한 사상이기도 합니다.

지구가 동서 냉전으로 쫙 갈라지기 시작하고, 잇속에 눈이 먼 남북의 정치집단들에게 따돌림 당하여 백범의 순정은 결국 무위로 끝나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이 더욱 빛나는지도 모릅니다. 적어도 민족을 생각하는 마음과 이웃을 나처럼 여기는 마음은 생생하게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이것은 정치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정치가 정치만을 닮기 때문에 제대로 된 정치가 안 된다는 것을 정치인들은 끝내 모를 것입니다. 시대가 어지러울수록 다시 읽게 되는 책입니다. 그리고 백범 일지 이후 많은 사람들이 자서전을 냈지만, 볼만한 것은 장준하의 것입니다. 청한 문화사에서 나온 ‘돌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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