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청주민예총 사무국장

 가을이다. 태양도 수줍어 일찍 숨고 낮 뜨겁게 울어대던 매미도 온데간데없어졌다. 낮달이 뜨는 들판엔 곡식이 여물어 가고 푸르기만 하던 오동나무 잎도 시들고 있다. 가을이다. 나는 이 가을 달뿌리에게 노래한다.

달뿌리 예찬

무심천 변 달뿌리도 한창 가을을 맞이하고 있다. 지난여름 홍수에 무심천이 잠기고 난 후 달뿌리는 질긴 생명력을 더 뽐내고 있다.

달뿌리는 봄과 여름을 지나며 날카로운 잎으로 무장하고 누구의 침입도 허락하지 않았다. 초록에 눈먼 손을 베고 기어이 붉은 피를 보고야 말았다. 밟힐수록 더 강하게 일어나고 칼날은 더 날카로워졌다. 이것이 달뿌리의 무기였다. 촘촘한 달뿌리의 열정이었다.

쌀쌀한 바람이 분다. 북에서 불어온 단풍의 계절에 달뿌리도 열매를 맺고 한 생을 정리하고 있다. 훌쩍 커버린 키와 비대해진 달뿌리의 군무 속으로 많은 이들의 마음이 흔들린다. 옅은 바람에 온몸을 맡기고 절대 흔들리지 않을 것 같던 지난여름의 풍경도 함께 흔들린다.

서로가 서로에게 몸을 의지하고 살갗을 어루만진다. 뜨거운 태양과 폭풍우 치는 날들 잘 버텼노라고 서로의 어깨도 토닥여 준다.

이제 달뿌리는 날카로운 칼날을 품고 있지 않다. 서로에게 상처 주지 않으려고 속에 품고 있던 부드러운 손을 내밀고 있다. 한 생이 한 생에게 온전한 마음으로 한 생을 전해주는 일은 언제나 위대하고 경이롭다. 강해질수록 유연해지는 몸, 달뿌리는 그렇게 가을을 맞이하고 있다.

이 가을 나는 어찌 단풍들지 못하는가. 녹슨 칼을 허리에 차고 한 계절을 보내놓고도 아무렇지 않은 척 아침에 눈을 뜨고 다시 너에게로 간다.

봄과 여름 나는 무심천 변 달뿌리와 자주 이야기를 나누었다. 달뿌리의 강인한 생명력에 감탄하며 맨발로 그와 마주하고 싶기도 했다. 가을이 오자 단단하기만 하던 달뿌리 잎이 유연해지고 부드러워지는 것을 보면서 자연의 순리에 다시 감탄했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말이 있다. 사람이 나이가 들고 학식과 지위가 높을수록 겸손해져야 한다는 교훈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사람을 만나기 어려운 세상에 살고 있다. 나이 들수록 지킬 것이 많아지면서 아집이 늘고 잔소리가 늘고 경계심도 많아진다.

나 역시 나만의 세계에 빠져 있는지 모른다. 나의 세계를 지키기 위해 누구의 침입도 허락하지 않는 방어막을 세우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늘어 죽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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