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갑 노인의 칭찬에 풍원이는 날아갈 것만 같았다. 모든 일이 잘될 것 같다는 의욕이 마구마구 샘솟았다.

“어르신, 물품은?”

풍원이는 오로지 윤 객주 상전에서 물건을 수급해줄 것인가에만 온 신경이 쏠려있었다.

“객주님이 네 장사가 승산이 있으니 필요한 만큼 얼마든지 대주라는 말씀이 있으셨다!”

“어르신, 고맙습니다!”

풍원이가 우갑 노인을 와락 끌어안았다.

“객주님께 고마워하거라! 그리고 모집이 끝나면 집산소 전의 수효와 각 위치, 필요한 물목과 양 등을 세밀하게 따져 알려주거라. 여기 상전에서도 준비를 해야 하니.”

“알겠습니다!”

충주 윤 객구 상전으로부터 물건을 대주겠다는 약조를 받고 풍원이는 부리나케 청풍으로 올라왔다. 그리고는 순갑이와 장석이에게 앞으로 행상은 접고 집산소 관리와 도거리에만 힘을 쓸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날부터 풍원이는 순갑이와 장석이를 대동하고, 청풍 인근 마을을 돌며 집산소와 전을 할 만한 장소와 사람들을 물색하러 다녔다. 북진을 중심으로 오른쪽으로는 황석리·후산리·장선리·부산리·용곡리·연론리·양평리·계산리, 왼쪽으로는 도화리·교리·학현리·연실·단리, 청풍 읍장 둘레로는 광의리·강화리·대류리·물태리·도곡리에 먼저 집산소를 내기로 했다.

황석리는 대덕산 아래 있는 마을로 황누리·제구미·들다리의 자연부락으로 이루어져 있다. 마을 앞으로는 남한강이 동서로 흐르고 황석나루가 있는데 장선이나 부산리 사람들이 청풍으로 가려면 반드시 거쳐야하는 길목이었다. 황석에 있는 나루가 구들배루이고 건너편이 광의인데 솔무정이 있었다. 황석리는 대부분 밭이었다. 땅은 강가에 위치한 까닭에 사질토여서 대부분 밭이었었다. 거기에서 생산되는 단무우·배추·옥수수가 주로 생산되었는데 맛이 뛰어나 진상까지 하고 있었다. 또 황골에서는 질 좋은 토종꿀이 많이 생산되었다. 

광의리는 청풍의 중심 마을로 땅이 넓어 붙여진 이름이었다. 광의에는 강가 마을인 솔무정과 강화동, 두 마을이 있었다. 솔무정은 광의 북동쪽에 있는 자연부락으로 소나무가 무대기로 울창하였다. 솔무정 앞으로는 황석나루가 있었는데 제천을 가려면 여기에서 배를 타고 강을 건너야 했다. 벌이 넓어 주로 쌀과 콩·조·보리·수수 같은 잡곡 소출이 많은 마을이었다. 또 딱발구랭이에는 닥나무가 많아 한지가 많이 생산되었다.

황석리와 광의리 사이에는 남한강이 가로질러 흐르고 있었다. 황석리는 북진과 더 가까우면서도 청풍과 더 교류가 잦았다. 두 마을은 나루에서 배를 타고 직접 교류를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도 황석리 사람들은 청풍읍장을 보러 다녔고, 청풍의 장사꾼들도 강을 건너 직접 황석리에서 생산되는 물산들을 사들이고 있었다. 북진 입장에서는 숟가락만 들면 먹을 수 있는 먹이를 코앞에서 빼앗기는 꼴이었으니 무슨 수가 있어도 그 고리를 끊어내야 했다. 그동안 북진은 그럴만한 능력을 가지고 있지 못하였기에 번연히 눈을 뜨고도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풍원이가 북진으로 장사터를 옮기면서 윤 객주 상전으로부터 물량을 얼마든지 받을 수 있었다. 풍원이는 그것을 십분 이용할 생각이었다. 황석리에 전을 차리고 마을에서 필요로 하는 물건을 대줌으로써 청풍읍으로 장보러 다니는 사람들의 발길을 서서히 끊어버릴 작정이었다. 광의리는 청풍읍의 중심마을이었지만 읍장과는 거리가 좀 떨어져 있었다. 일테면 청풍읍을 구성하는 큰 마을일 뿐 장이 서는 그런 곳은 아니었다. 청풍읍장을 가려면 광의리 솔무정을 거쳐야 하는 그런 곳이었다. 그러니 광의리는 청풍읍장의 목이었다. 광의리에 북진의 전을 차린다는 것은 청풍읍장 입장에서 보면 자신들의 코앞에다 도전장을 내민 것이나 진배없었다. 풍원이로서는 광의리에 전과 집산소를 내는 것이 다른 어떤 곳보다도 중요했다.

“풍원아, 괜찮을까?”

순갑이는 청풍도가에서 어떤 해코지나 하지는 않을까 해서 몹시 불안해했다. 청풍도가의 힘은 대단했다. 인근에서 청풍도가에 맞설만한 장사꾼은 없었다. 심지어는 경강상인들조차도 청풍도가의 눈치를 보며 그들의 지시에 따라 짐을 풀고 장사를 할 정도였다. 그런데 풍원이가 청풍도가의 코앞이나 다름없는 광의리에 전과 집산소를 낸다고 하니 두려워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형, 난 가진 게 없으니 무서울 것도 없어! 가진 놈들이 제 것을 잃어버릴까 방어막을 치느라 그러는 것에 내가 겁내야 할 이유가 없잖아?”

풍원이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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