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청주예총 부회장

‘절망’적인 상황에 직면해 본 적이 있는가?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 직면해 보았는가? 손 쓸 방도가 전혀 없다고 가정해 보자! 어떻게 하겠는가?  얼마 전 필자는 그런 절박한 상황을! 이역 타국에서 겪어 보았다.

발단은 허리였다. 중국으로 오기 전부터 허리가 좀 아파서 병원에 가 보았더니 척추는 괜찮고 근육통증이라고 하기에 대수롭잖게 생각해 왔다.

그날은 저녁을 먹고 식탁에 앉아서 TV를 보고 있는데, 2층에 사는 선생님이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놀라서 ‘벌떡!’ 일어나다가 그 지경을 당했다. 당초에는 몰랐다. 그를 배웅하고 침실로 들어가려고 하니 의자에서 꼼짝도 못하겠다. 허리가 끊어지는 것 같아서 도저히 어찌할 수가 없었다. 아내 등에 업히려하니 하체가 따로 노는 것 같이 아팠다.

‘어쩌다 이지경이 됐지!’ 목이 말라 물을 마시려니 그것조차도 힘들었다. 당장 ‘대변’볼 일이 생기면 어쩌나? 그러나 우리로서는 더 이상 어찌 손을 쓸 방도가 전혀 없었다. 그렇게 누워 있다가 문득 ‘관세음보살’이 떠올랐다. 천개의 눈과 천개의 손으로 고통 받는 중생들을 어루만져 준다는 ‘천수천안(千手千眼)의 관세음보살!’ 그 보살을 찬양한 ‘천수경(千手經)’이란 경전이 있다. “천수천안 관자재보살 광대원만 무애대비심 대다라니 게청!” 한번 외우는데 20여분 걸리는 천수경을 무조건 큰소리로 암송하기 시작했다. 특히 ‘신묘장구대다라니’ 대목에 이르러서는 더욱 큰소리로 반복했다.

그러다 깜빡 잠이 들은 것 같았다. 뭉게구름이 어둡게 깔린 하늘 넘어 먼 곳에, 붉게 물든 석양이 환하게 비추고 있다. ‘아! 저기가 서방정토 극락세계이구나!’란 생각이 들더니 깜빡 잠이 깨었다. 눈을 뜨니 새벽인 것 같다. 창문에는 어둠이 걷히는 걸 보니 새벽인가 보다. 

그때부터 치열한 발버둥이 시작됐다. 옆에서 곤히 잠든 아내 몰래 죽을힘을 다해 벽에 기대어 일어나기 시작했다. 생 땀이 온몸을 적신다. 지척이 천리라더니, 바로 앞이 화장실인데도 거기가 ‘천리’였다. 드디어 화장실문을 간신히 열고 가까스로 변기에 앉았다. “관세음보살님! 감사합니다” 눈물이 저절로 흐르기 시작했다.

살아온 지난 세월이 주마등 스쳤다. ‘저승길이 멀다더니 문밖이 저승일세’란 회심곡이 생각났다. 죽음이란 바로 멀리 있는 게 아니었다. 이 자리에서 일어설 수만 있다면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   인생행로에 목표이자 이정표가 발원이다. ‘나의 행복을 위해 다른 사람을 아프게 하지 않겠습니다. 부질없는 욕심을 버리고 구름을 벗어난 달처럼, 지혜에 눈떠서 내가 아는 모든 사람을 깊이 존중하고 공경하며 살겠습니다’라고 발원(發願)을 했다.

사느냐 죽느냐 절망적 상황에 직면해 천수천안관세음보살의 가피(加被·은총)를 입어 재기할 수 있었고, 얼마 남지 않은 인생행로의 길잡이가 될 ‘발원’을 다짐했다. 이렇게 소중한 체험을 필자는 절해고도(絶海孤島) 중국에서 했다. 오늘도 “나의 행복을 위해 남을 아프게 하지 않겠습니다”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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