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번역가

기원전 588년 진(陳)나라 영공(靈公)은 음란한 자였다. 신하 공녕, 의행보와 함께 대부 하어숙의 아내 하희(夏姬)와 간통을 일삼았다. 하루는 이 일을 알게 된 신하 설야가 영공에게 간언하였다.

“군주가 신하와 함께 음란한 짓을 하면 백성들이 과연 무엇을 본받겠습니까?”

영공이 이 말을 괘심하게 여겨 공녕과 의행보에게 그대로 전하였다. 그러자 두 사람이 아뢰었다. “우리가 설야를 손볼 테니 군주께서는 모르는 체 하십시오.”

하고는 무사들을 시켜 쥐도 새도 모르게 설야를 죽였다. 어느 날 영공이 두 신하와 함께 하희 집에서 술을 마시며 놀다가 농지거리를 하였다.

“하희의 아들 징서가 그대 둘 중 하나를 닮은 거 같소!”

그러자 두 사람이 농으로 답하였다.

“징서가 가만 보니 군주를 많이 닮은 것 같습니다. 하하하!”

마침 지나가던 징서가 이 이야기를 듣고 몹시 분노했다. 집안의 하인들을 불러 모아 작당을 하였다. 술자리를 마치고 나온 영공은 마굿간에서 날아온 뜻밖의 화살에 맞아 그 자리에서 숨졌다. 공녕과 의행보는 요행히 도망하여 초나라로 달아났다. 징서는 이어 반대 세력을 모아 태자 오를 죽이려 했으나 그는 미리 알고 이웃나라로 도망쳤다. 이어 징서가 진(陣)나라의 군주에 올랐다.

이 해 겨울에 초나라 장왕이 징서가 영공을 시해했다는 이유를 들어 군대를 거느리고 진나라를 침략하였다. 초나라 군대를 보자 진나라 백성들이 모두 놀랐다. 이에 장왕이 말하였다. “놀라지 마라. 나는 단지 징서를 죽이면 그만이다.”

그 말대로 초나라 군대가 징서를 죽였다. 그러나 장왕은 군대를 철수시키지 않고  진나라를 초나라의 현으로 편입시켜 차지했다. 이에 진나라 신하들이 모두 축하 인사를 올렸다. 하지만 제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돌아온 신하 신숙시(申叔時)만은 인사를 올리지 않았다. 장왕이 그를 불러 물었다.

“너는 어찌하여 축하 인사를 하지 않는 것이냐?”

그러자 신숙시가 대답했다. “소를 끌고 가다가 남의 밭을 밟았더니 밭주인이 소를 빼앗는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남의 밭을 밟은 것은 분명 잘못이지만 그렇다고 소를 빼앗는 것은 너무 심하지 않습니까? 지금 초나라 왕께서는 징서가 군주를 시해했다고 하여 정의의 기치로 징벌하셨습니다. 그러면 족한 것이지, 어찌 나라마저 빼앗고 그 땅을 차지한단 말입니까? 그래서는 어느 제후가 믿고 따르겠습니까? 신은 그런 까닭에 축하를 올리지 않은 것입니다.”

장왕이 말을 다 듣고는 참으로 옳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태자 오를 맞이하여 군주에 오르게 하고 초나라 군대를 철수시켰다. 이는 사마천의 ‘사기세가(史記世家)’에 있는 이야기이다. 혜전탈우(蹊田奪牛)란 소를 몰고 가다 남의 밭을 밟았다고 해서 밭주인이 소를 빼앗는다는 뜻이다. 죄보다 벌이 지나치게 무거움을 이르는 말이다. 예전에 잘못된 법 집행으로 사법부가 국민의 지탄을 받아왔다. 이제 새로운 대법원장이 임명됐으니 사법부의 정의가 되살아나기를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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