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 시인 충북예술고 교사

진실은 때로 불편합니다. 그리고 두렵습니다. 특히 사회 정의와 관련되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아킬레스건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친일'입니다.

얼마 전 학계에서 친일인명사전을 만든다고 정부에 예산을 요구했을 때 이 친일은 끝난 것이 아니라 아직도 강하게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세력들이라는 것이 만천하에 드러났습니다. 예산안이 취소되었고, 10년을 해오던 작업이 무산될 위기에 처했습니다. 그러자 뜻밖의 일이 생겼습니다. 인터넷을 중심으로 모금 운동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친일인명사전이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이것은 두 가지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아직도 친일세력이 우리 사회를 보이지 않게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과, 잘못된 과거를 반성하지 않는 세력들을 용서할 수 없다는 이름없는 사람들의 열망이 보이지 않게 우리 사회를 떠받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일본이 물러간 지 벌써 70년 가까이 흘러갔으니 세대로 치면 두 세대가 바뀐 셈인데, 친일에 관한 감정은 이렇듯 국민들을 보이지 않게 둘로 쫙 갈라지게 만드니, 생각하면 할수록 소름이 끼치는 일입니다.

현실에서 일본에 빌붙어 살던 자들은 역사의 뒤안길로 자신의 행적을 숨기고 평범한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아갔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당시 왕성한 사회활동을 하던 지도층과 자신의 생각을 흔적으로 남길 수밖에 없는 예술인들이 그런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의 행적조차도 해방 후에는 거론하는 것을 금기시했습니다. 그걸 연구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빨갱이로 몰아붙이거나 연구를 방해하곤 했습니다. 그래서 해방 후에 친일문학을 연구한다는 것은 목숨 내놓고 하는 일이 됐습니다.

이 책이 돋보이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입니다. 그런 외부의 협박에 굴하지 않고 드러난 자료를 최대한 정리하여 친일문학론의 기틀을 잡았습니다. 여기에 거론된 인물의 이름을 보면 한국을 통째로 일본에 갖다바치고도 남았다는 서글픈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우고 귀로 듣는 모든 사람들이 일본을 위해 몸과 마음을 다 바친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고 혀를 차게 됩니다.

아픈 기억이지만, 그 아픈 기억을 무시하면 똑같은 일이 되풀이된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입니다. 이 책은 그런 점에서 문학 연구하는 사람들이 지고 가야 할 짐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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