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보영 수필가

큰 외숙모가 오셨다. 시오리나 되는 산길을 매운 칼바람을 맞으며 걸어오시느라 얼굴은 붉게 상기 되었고 양 손에는 큼직한 보따리가 들려 있다. 어머니는 외숙모의 손에 것들을 받아들며 반갑게 맞이하신다. 어머니의 손을 잡고 안방에 든 외숙모는 비단 천에 모란꽃이 곱게 수놓인 조바위와 두루마기를 벗어 놓고 어머니와 맞절을 하고 있다. 외숙모는 “작은 아씨 그간 가내 두루 평안하고 아프지 않고 잘 지냈느냐”며 안부를 물었고 어머니는 “형님 오라버니도 안 계신데 큰 살림하느라 하느라 얼마나 힘드셨느냐”며 안타까웠던 마음을 털어 놓으신다.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은 함께한 세월만큼이나 애틋함이 녹아 있다. 외숙모는 어려서부터 잔병치레가 많았던 손아래 시누이가 늘 염려스러웠고, 어머니는 남편을 일찍 보내고 혼자서 시어른 모시고 아이들 건사하며 종부로서 소임을 다하느라 애쓰는 친정 올케가 안쓰러워 노심초사 하셨다.

외숙모가 오시는 시기는 늦은 가을이나 초겨울 어느 때 즈음이었다. 광적 농사를 짓느라 일손이 바쁜 철에는 바깥나들이를 한다는 것이 용이하지 않은 탓도 있었지만 가을걷이를 끝낸 뒤라야 거두어들인 두태 같은 것들을 가지고 올 수 있어서였던 것 같다. 그래서인가 일 년에 한 두 번은 꼭 손아래 시누이를 보려 오시는 외숙모의 손에는 올망졸망한 것들이 가득 담긴 보따리가 들려 있었고 그 속에는 인절미가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병약했던 시누이가 가장 좋아했던 음식이 뜸이 잘 든 고두밥을 절구에 찧어 콩고물을 듬뿍 무친 인절미라는 것을 잊지 않고 있는 외숙모의 속 깊은 마음의 표현이었다. 어머니의 머리에 서리가 내렸어도 외숙모가 어머니를 부르는 호칭은 항상 ‘작은아씨’였고 두 분은 만날 때마다 맞절을 하셨다.

가을로 접어들면 외숙모가 언제 오시려나, 기다려지곤 했다. 어려서는 외숙모가 오시는 날이면 밥상에 맛난 것들이 많아서, 외숙모가 가져온 보따리 속에 밤이나 대추, 땅콩 등의 주전부리를 할 수 있는 것들이 풍성해서였다. 나이 들어가면서는 피 한 방울 섞여 있지 않은 시누이와 올케라는 인연으로 만나 서로 존중하며 보듬고 살아가는 두 분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는 것이 좋아서였다.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삶 중에 기강 귀하고 필연적인 것을 꼽으라 한다면 남녀가 서로 만나 일가를 이루는 일이 아닌지 모른다. 그 과정 속에는 배우자를 중심으로 새로운 가족이 형성 된다. 나를 중심으로 시가에는 시어머니와 시누이가 있고, 본가의 내 어머니는 누군가의 시어머니가 되고 나는 시누이기도 하다. 그리고 언젠가는 나도 친정어머니, 시어머니가 될 수밖에 없다. 이는 결혼이라는 행태가 지속 되는 이상 혈연과는 무관하게 이루어지는 가족관계이고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다. 그렇다면 받아 드릴 수밖에 없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 이것이 오늘을 살아가는 며느리, 시어머니, 시누이 등 이들이 끊임없이 고민해야 할 화두다.

지금 나는 시어머니고 친정어머니다. 삼남매 모두 출가하여 일가를 이루고 살아간다. 내 삶의 전반에 걸쳐 가장 축복받은 일중의 하나를 꼽는다면 그들이 내 아이들의 배우자로 와 내 자식이 되어준 일이다. 그들로 하여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이유는 간단하다. 내 배 아파 낳은 자식들보다 훨씬 낫다는 생각에서다. 애면글면 온 힘을 다하여 반듯하고 따뜻한 성품을 가질 수 있도록 양육하여 내게 보내준 분들에게 감사한다. 참 고맙다.

내 아이들을 돌아본다. 어미의 모난 성품을 닮은 것 같아 가슴이 시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댁 어른들로부터 ‘네가 우리에게 와 주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더 할 나위 없이 좋으련만 싶어 마음 졸이곤 한다. 욕심이다. 언감생심이다.

꽃다운 시절, 피 한 방울 섞여 있지 않았음에도 가족이라는 인연으로 맺어져 함께 나이 들어가는 시누이와 동서가 있다. 꽃길만 걷게 해주겠다는 한 남자의 속임수에 넘어가 맺어진 관계다. 그들과 함께 하면서 서로를 알아가고 받아들이느라 버거운 날들이 많았다. 접붙임이 잘 되어야 하는데 점액질이 부족한 탓인가 잘 붙지 않아 일그러질 때도 부지기수였다. 쓰고 달고 맵고 짠 소용돌이를 겪으며 여기까지 왔다. 긴 날들이었다. 서로의 모습 속에 세월의 흔적들이 녹아 있다. 그들도 나도 우리 모두 안쓰럽다. 맛난 것 있으면 생각나고, 더러는 보고 싶다. 퍼질러 앉아서 속내를 털어 놓으며 눈물바람, 웃음바람으로 질펀해진들 무슨 흉허물이 되랴.

시누이와 올케로 만나 긴 세월을 서로 섬기며 살아가시던 두 분을 생각한다. 인간관계 중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것이 피붙이로 맺어진 관계가 아닌가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혈연으로 맺어진 관계가 아니면서도 그에 버금가는 끈끈한 정으로 사셨던 두 분의 삶은 어디에 기인한 것이었을까. 같은 길을 걸어가지 않으면 안 되는 여인의 삶에서 오는 동질감? 아니면 어머니 여섯 살에 만나 열여섯 혼인할 때까지 함께 살아오면서 맺어진 끈끈한 정 때문?.

외숙모의 마음속에 무엇이 자리하고 있었기에 산모롱이를 돌고 돌아 고개를 넘지 않으면 안 되는 먼 길을 걸어 손아래 시누이를 보러 오실 수 있었는지 알 수 없다. 가을로 접어들기 시작하면 ‘너희 외숙모 올 때가 되었다’며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시던 어머니의 마음도 좀처럼 헤아려지지 않는다. 유추해 보지만 가늠이 되지 않는다.

두 분의 삶을 돌아보며 존중하고 존중받으며 아우름 속에 익어가는 삶의 가치는 무엇으로도 가늠할 수 없음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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