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 제 소견이 짧았습니다.”

“눈앞만 보지 말고 멀리 보거라. 세상에 돈 욕심 없는 사람이 있겠느냐. 이번에 한 냥을 받았는데 다음번에 똑같은 일을 하고도 서푼을 받았다면 일할 생각이 나겠느냐. 일을 한 대가는 공정하게 하거라! 그리고 좀 더 줄 생각이라면 분명한 명목을 붙여 주도록 하거라. 돈은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약이 될 수도 있고 독이 될 수도 있다!”

돈에 대한 풍원이의 마음가짐이 못마땅했던지, 우갑 노인의 잔소리가 자꾸 길어졌다.

“이번 장사가 얼마나 남았는지요?”

풍원이가 말머리를 돌렸다.

“네가 행상을 시작하며 상전에서 가지고 간 소금 원전을 제하고도 꽤 톡톡하게 장사를 했다. 곡물 금만 따져도 곱절 장사는 됐고, 약초만 처분해도 그 이상은 받을 것 같다. 특히 동충하초는 권약국이 보자마자 선돈으로 서른 냥을 내놓고 애걸복걸하기에 넘겨주었다.”

“동충하초만 삼십 냥이요?”

풍원이는 깜짝 놀랐다.

거리골 두출이가 도와주는 셈 치며 주기는 했지만 그렇게 귀한 것인지 풍원이는 알지 못했다. 두출이는 복령과 당귀와 동충하초 모두 해서 석 냥을 달라고 했지만, 약초 금을 알지 못하는 풍원이가 찜찜해하자 순득이가 흥정을 해 두 냥 어치 소금을 주고 바꾼 물건이었다. 그것을 서른 냥을 받았다면 무려 열다섯 배를 남긴 장사인 셈이었다.

“어제 배로 가지고 온 물건들은 아직 선별을 하지 못했으니 다음 파수에 마늘과 함께 하자구나. 하수오는 누가 봐도 값져 보여 한양 같은 넓은 바닥에 내놓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배가는 길에 보내려 한다. 다른 약재들도 선별해 상상품들은 모두 한양으로 보낼 작정이다.”

“이번 약재들은 그렇고, 지난번 거둬들인 물산들은 모두 해서 얼마나 될까요?”

“네가 가지고 간 소금이 모두 열일곱 섬이니 서 냥씩 해서 쉰한 냥이 원금이고, 곡물하고 약초 모두를 셈 해보면 원금을 제하고 팔십 냥은 너끈할 성 싶다.”

“팔십 냥이요?”

풍원이는 또 한 번 놀랐다.

보름 만에 팔십 냥이라니, 상상품 쌀을 하루에 한 가마씩 번 셈이었다. 이렇게 장사가 되면 전도 사고 집도 사고 땅도 사고 금방 부자가 될 것 같았다.

“그걸 어떻게 주랴?”

“우선 제일 좋은 상상품으로 쌀 두 섬만 내주셔요.”

“쌀은 두 섬씩이나 뭘 하려구?”

“장석이 형 품값하고, 어머니가 집에서 물건 갈무리해준 품값하고 집 빌린 값을 드리려고요.”

“그렇게 얘기를 했구만, 금방 또 기분대로 돈을 쓰느냐?”

우갑 노인이 타박을 했다.

“어르신 뜻은 잘 알고있습니다요. 그렇지만 이번에 장석이 형 어머니가 정말 많이 도와주셨어요. 이제껏 쌀밥은커녕 밥 한 번 양껏 못 먹어봤을 텐데 쌀을 보고 기뻐하는 얼굴을 꼭 한 번 보고 싶습니다. 이번이 첨이니 흡족하게 해드리고 싶어요!”

“이눔아, 그렇게 정이 많아 어찌 장사를 할꼬!”

핀잔은 주었지만 우갑 노인도 풍원이 마음 씀씀이가 마냥 싫은 눈치는 아니었다.

“어르신, 저도 독할 때는 아주 독해요! 그런데 장석이 형 어머니를 보면 어머니 생각이 나서 꼭 한번 기쁘게 해드리고 싶었구먼요.”

그것은 풍원이의 진심이었다.

“어쨌든 그만하면 장사를 잘한 셈이다. 고생했구나!”

우갑노인의 위로 말에 풍원이는 콧잔등이 시큰해졌다.

이튿날 윤 객주 집을 나서는 장석이는 한껏 신이 났다. 반년 치 세경과 맞먹는 백미 한 가마를 보름 만에 벌다니 장석이로서는 꿈에도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쌀 보고 입 벌어질 어머이와 동생들을 생각하니 너무 좋다!”

장석이는 생각만 해도 즐거운 듯 얼굴에서 웃음꽃이 떠날 줄 몰랐다. 장석이는 기뻐서 어쩔 줄 몰라했지만, 순갑이는 조산촌 거리골에서부터 계속해 표정이 좋지 않았다.

“순갑이 형님도 며칠 고생을 했으니 쌀 한 말을 드릴게요!”

풍원이가 순갑이의 속내를 훤히 들여다보고 있는 터라 서둘러 선심을 썼다. 하루 종일 남의 품을 팔러가도 보리쌀 한 됫박 받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것도 불러줘 일을 갔을 때나 가능한 것이지, 품을 팔 일이 가뭄에 콩 나듯 하니 품삯으로 보리쌀 한 됫박만 받아와도 눈이 번했다. 그런데 날짜로야 사흘이지만 실제 일을 한 것은 하루도 채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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