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원이는 나를 따라 오너라!”

우갑 노인이 풍원이를 데리고 상전 뒷마당으로 나갔다. 거기에는 화톳불을 밝혀놓고 상전 일꾼들이 물건들을 갈무리하고 있었다. 그것은 마늘 더미였다.

“저게 다 오늘 들어온 물건들입니까?”

“달천 인근에서 들어온 논마늘인데 여문 게 부실하구나. 다다음 파수까지는 실한 놈으로 천오백 접을 한양으로 실려 보내야 하는데 알이 잘아 걱정이구나. 골라봐야 오백 접 나오기도 빠듯하겠다. 나머지 천 접을 채워야하는데…….”

우갑 노인이 마늘을 만져보며 걱정에 빠졌다.

“어르신 제가 한 번 알아보겠습니다!”

“네가 무슨 수로 그 많은 마늘을 구한단 말이냐?”

“이번 장사길에 보아둔 곳이 있습니다.”

“그게 어디더냐?”

우갑 노인이 반색을 하며 물었다.

“조산촌입니다.”

“물건은 괜찮더냐?”

“마늘은 아주 좋습니다!”

풍원이가 자신있게 대답했다.

풍원이도 채소나 양념 종류들에 대해서는 일가견이 있었다. 한참 전 청풍읍장에서 채마장사를 하며 눈만 뜨면 보았던 것이 그것이었다. 풍원이가 봐도 상전에 쌓여있는 마늘은 조산촌에서 보았던 마늘과 서로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차이가 났다. 우선 대깔부터 그러했지만, 달천 마늘은 알도 잘고 물렀다. 그에 비하면 조산촌 마늘은 알도 배는 굵었고, 단단한 알을 두드리면 쇳소리가 났다. 그만큼 잘 익어 맛도 좋고 알이 찼다는 이야기였다. 마늘은 보관이 까다로워 알이 무른 것은 쉽게 썩어버렸지만, 쇳소리가 나는 놈은 겨울을 넘겨 봄까지 먹어도 괜찮을 정도로 오래 갔다. 마늘이 재배지에 따라 이렇게 차이가 나는 것은 토질에 있었다. 우선 습이 많은 논마늘에 비해 상대적으로 습이 적은 밭마늘 품질이 뛰어났다. 조산촌은 산지여서 밭이 많은데다 석회질에 사토여서 물 빠짐이 좋아 당연히 마늘이 단단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걸 구할 수 있겠느냐?”

“그런데 엮어서 가져올 수가 없습니다!”  

풍원이가 조산촌에서 뽑아놓은 마늘을 미처 처리하지 못해 밭 둔덕에 그대로 쌓여있던 것을 떠올리며 말했다. 일손이 딸려 깜깜한 새벽에 나가 뽑아온 마늘을 매달지 못해 상할까 쩔쩔매던 큰머느실 익수도 떠올랐다.

“엮는 것은 염려 말거라! 물건만 있다면 밤을 새서라도 일꾼들을 부리면 될 일이다.”

우갑 노인이 몹시 서둘렀다.  

물건을 선적하려면 아직 열흘이 남아있었지만, 우갑 노인이 서두르는 것은 당연했다. 장사라는 것이 한 번 약속을 하면 천지개벽을 해도 지켜야 했다. 한 번 거래가 틀어지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약속을 했던 두 사람뿐 아니라 그 물건을 기다리고 있을 많은 사람들과도 거래가 끝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한 번 잃어버린 신용을 다시 회복하려면 몇 배의 노력을 해도 처음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그러기에 그 사람과 약속을 하면 어떤 일이 있어도 반드시 지킨다는 확신을 주어야 거래가 지속될 수 있었다. 그러니 약속을 한 날짜에 맞춰두었던 물건을 깔끔하게 보내기 전까지는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마늘은 네게 맡기겠다. 그건 그렇게 하기로 하고 그간 네가 행상을 하며 상전에 가져왔던 물산들을 셈 보도록 하자.”

“아직 독립을 한 것도 아니고, 상전물건을 가져다 장사를 배운 것이니 설령 이득이 생겼다 해도 상전 것이지 제 것이겠습니까? 혹여 이득이 남아 주시려면 장석이, 순갑이 형이 고생을 했으니 두 형님에게나 나눠주세요.”

풍원이가 자신은 말고 두 사람에게 남은 이득금을 나눠주라고 했다.

“돈은 그렇게 쓰는 것이 아니다! 도대체 그동안 뭘 배운 것이더냐?”

우갑 노인이 정색을 하며 풍원이를 질타했다.

“왜 그러시는지요?”

풍원이가 영문을 몰라 물었다.

“네가 저 사람들을 고용했는데 품값을 주면 되지, 왜 이득금을 나눠주느냐? 앞으로도 계속 같이 일을 할 생각이라면 처음부터 선을 분명히 하고 계산도 분명하게 하거라!”

우갑 노인이 풍원이에게 일침을 가했다.

우갑 노인의 이야기는 아무리 가깝다 해도 장사는 인정에 끌리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돈 때문에 좋았던 관계가 끊어지고 척을 지는 것을 수없이 봐왔기 때문이었다.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으며 확실하게 셈을 해야만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망치가 약하면 못이 튄다고 주인이 주인 행세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객에게 잡혀 먹힌다며 풍원이의 약한 마음을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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