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최대 명절인 추석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백화점과 유통업체들은 선물 예약 판매로 부산하다. 그러나 농민들은 답답하다.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 때문이다. 당초 계획과 달리 추석 전 김영란법 개정이 물 건너가면서 선물용 농산물 판매는 이번 명절에도 큰 재미를 보기는 어렵게 됐다. 정부는 모호한 법 기준으로 애꿎은 농민들의 피해가 커지자 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지만 진척이 없는 상태다.

이달 28일이면 식사 3만원, 선물 5만원, 경조사비 10만원을 상한으로 하는 김영란법 시행 1년을 맞는다. 이 법은 그동안 우리 사회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무엇보다 부당한 청탁과 과도한 접대관행을 없애고 청렴문화 정착에 기여하고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해관계인 간에 식사는 물론 선물이나 경조사비를 전달하는 부분까지 제한을 두는 등 강력한 규제 덕분이다.

최근 취업포털 커리어가 인사담당자 48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김영란법 시행 1년’ 관련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절반에 가까운 48.5%가 ‘접대 및 뇌물 청탁 등의 비리가 줄어들었다’고 답했다. 특히 접대 문화에 대한 질문에 ‘접대비가 줄었다’가 48.7%, ‘변화 없다’ 32.3%로 나타났고, 아예 ‘접대 자체가 사라졌다’는 의견도 17.4%나 나왔다. 분명 사회가 깨끗해지고 있다는 분석이니 지속적으로 시행해야할 제도다.

그럼에도 적용 대상이 광범위하고 애매한 법 조항 탓에 예상보다 큰 피해를 입는 분야가 생겨나고 있다보니 현실에 맞게 손질해야한다는 여론도 만만치 않다. 그중에 직격탄을 맞고 있는 곳이 농축산업과 화훼업 등 농민들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김영란법 시행 후 첫 명절인 올 설 대목의 국산 농축산물 선물세트 판매액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전년 대비 과일은 31%, 쇠고기는 24.4% 감소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이를 토대로 품목별 연간 생산 감소액이 한우 2천286억원, 과일 1천74억원, 화훼 390억∼438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김영란법의 경직된 규정으로 국내 농축산물 소비에 악영향을 주면서 농민들의 불만은 팽배해 있다. 농협 품목별전국협의회는 “우리나라 주요 농축산물의 40%가량이 선물용으로 명절 기간에 집중적으로 판매되고 있다”며 “청탁금지법 시행으로 명절에 판매되지 못한 물량이 평시에 공급돼 가격하락이 이어지다 보니 농민들은 이중고를 겪고 있다”고 주장했다.

부정부패 근절이라는 김영란법 본래의 취지에는 공감한다. 긍정적인 효과도 확인됐다. 다만 어느 한 분야의 고통을 계속 외면하며 희생을 강요하는 건 곤란하다. 법의 취지가 아무리 좋더라도 농촌경제를 위축시키는 과도한 조항은 고치는 게 맞다. 정부와 국민권익위원회의 지혜로운 법 개정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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