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님, 허드렛일 하는 머슴이여.”

“머슴이라도 이런데서 일 한 번 해보고 싶다!”

순갑이는 정말 풍원이가 부러운 눈치였다.

그날 저녁 느지막이 부름을 받고 풍원이가 우갑 노인을 따라 윤 객주가 일을 보는 방으로 갔다.

“풍원아 긴히 할 말이 있어 불렀다.”

“무슨 말씀이온지?”

“우갑 아범에게 그동안 네가 행상 다니며 한 일들을 들었다. 이제 독립해서 네 장사를 한 번 해보지 않겠느냐?”

윤 객주가 풍원이 의향을 물었다.

“아직은…….”

풍원이도 언젠가는 독립을 하겠다고 마음은 먹고 있었지만 막상 듣고 보니 적이 당황스러웠다.

“물건은 네가 필요하다면 얼마든 대주겠다!”

“객주 어른, 고맙습니다. 그렇지만…….”

장사꾼에게 물건만 외상으로 대주겠다는 것도 큰 호의였다. 대부분 장사꾼이나 행상들은 선돈을 주고 물건을 사다 장사를 하는 것이 상례였다. 수완이 있어 장사를 하고 싶어도 물건 떼올 밑천이 없어 못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런 터에 물건을 그냥 대주겠다고 하니 가장 큰 문제가 해결된 셈이었다. 그래도 풍원이에게는 걸리는 문제가 있었다.

“모든 것을 완벽하게 갖추고 일을 할 수는 없다. 내, 그동안 너를 유심히 보고 들은 바로는 그만큼 배웠으면 됐다! 장사꾼이 장사수완만 터득했으면 됐지 달리 뭐가 필요하겠느냐.”

윤 객주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이야기를 했지만, 풍원이 입장에서는 달랐다. 행상을 하든 뭐를 하든 장사를 하려면 우선 창고라도 있어 물건들을 보관해놓을 곳이 있어야했다. 당장 물건을 쌓아놓을 곳이 없는 형편인데 어떻게 장사를 시작할 수 있겠는가. 지금도 장석이네 집에 빌붙어 겨우 행상이나 하는 처지였다. 그것도 행상을 다니는 동안만 임시로 보관해놓은 것이었다. 그런데 독립을 해서 본격적으로 장사가 시작되면 상시 물건을 쌓아놓아야 하는데 남의 살림집에 마냥 그렇게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우선 당장 비바람이라도 가릴 수 있는 거처는 내가 마련해줄 터이니 장터 가까이 마땅한 데를 한 번 알아보너라!”

윤 객주가 장사를 할 수 있는 전은 못해주더라도 우선 기거할 거처 정도는 마련해주겠다고 했다. 

“객주 어른, 뭘 믿고 제게 물건도 대주고 거처도 마련해주신대요?”

윤 객주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풍원이에게 호감을 가지고 대했다. 주막집에서, 유즈막에서, 그리고 그의 상전에서 일을 하게 해주고, 이제 독립할 것을 권하며 물건과 거처까지 마련해주겠다고 한다. 이제껏 무슨 까닭으로 자신에게 호의를 베푸는 것인지 윤 객주의 속내가 궁금해 풍원이가 물었다.

“유즈막에서 첨 본 순간 네 눈빛에서 간절함을 봤다. 그런 간절함을 가진 녀석이라면 무슨 일이라도 해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상전에서 일하는 너를 지켜보며 내 선택이 잘못되지 않았다는 것을 확신했다. 무슨 일이든 필요성을 스스로 절실하게 느끼지 않으면 밥숟갈로 떠먹여줘도 고마움을 모른다. 네가 장사해서 돈을 벌겠다는 생각이 또렷했기 때문에 나는 너를 조금 도와주었을 뿐이다.”

“어르신, 이 은혜를 어찌 다 갚아야 할지…….”

풍원이는 윤 객주의 호의가 고마워 말을 맺지 못했다.

“모든 게 자기 할 나름이다. 지금까지 네가 했던 대로만 하면 너는 잘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부터는 네 스스로 해보거라! 그리고 장사가 이득이 중하기는 하다만 그래도 사람이 먼저라는 것을 잠시도 잊지 말거라. 빠꼼이처럼 눈앞의 이익만 쫓으면 밥은 먹겠지만 큰 장사꾼의 되지 못한다. 큰 장사꾼은 멀리 내다봐야 한다!”

“명심하겠습니다!”

“우갑 아범, 거처할 집은 그동안 풍원이가 우리 상전에서 일한 값을 계산해서 마련해주게!”

“알겠습니다요, 객주 어르신!”

우갑 노인이 깍듯하게 읍을 했다.

“객주 어른, 빚진 것은 장사해서 반드시 갚겠습니다.”

“그럼 갚아야지! 남의 돈이나 물건을 허수로이 알면 신용을 잃는다. 장사는 신용이 기본이다. 신용을 잃으면 장사는 망한다!”

윤 객주가 마지막으로 풍원이에게 신용을 되새겼다.

“객주 어른 말씀 새기며 열심히 장사를 해보겠습니다. 그래서 꼭 큰 부자가 되겠습니다.”

풍원이가 윤 객주 앞에서 다짐을 하며 방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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