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구질구질하게 사느니 차라리 죽어버리는 게 낫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그래도 살만한 것들이나 하는 소리였다. 죽을힘도 없는 백성들에게는 그런 소리도 부러웠다. 아무리 높은 이자의 환곡이라도 우선은 먹고 살아나야 했다. 평생 뭐를 해보고 싶다고 욕심을 부려보지도 못한 사람들에게는 삼시세끼만 먹어도 그것으로 족했다. 더구나 요즘 같은 춘궁기에는 종일 한 끼도 제대로 입을 때워보지 못했다. 어른이 배를 곯아 뱃가죽이 등대기에 가 붙는 것은 얼마든지 견딜 수 있었다. 정말로 참을 수 없는 것은 아이들이 배고파 칭얼거리는 소리였다. 그럴 때면 남의 집 담이라도 넘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전들은 고을민들의 그런 약점을 이용해 상상할 수도 없는 높은 이자를 받고 곡식을 꿔주었다. 그것이 허울 좋게도 춘궁기에 백성들에게 곡식을 꾸어주었다가 추수기에 이자를 붙여  받는다는 환곡이었다. 풍원이 아버지 최선복도 청풍 관아 아전으로 있으면서 그런 식으로 착취하다 고을민들로부터 원성을 샀던 것이었다.

“배를 타고오니 너무 좋네!”

장석이는 뱃전에 서서 사방을 둘러보며 어린아이처럼 좋아했다.

배는 왼쪽으로 꽃거리를 지나 오른쪽으로 말목산을 끼고 돌며 뱃머리를 크게 틀었다. 뱃머리 앞으로 깊은 협곡이 나타났다. 배는 그 속으로 빨려들 듯 물길을 따라 들어갔다. 강 양쪽으로 말목산, 가은산, 제비봉이 경외감이 느껴질 정도로 우람하게 서있었다. 앞으로는 구담봉이 물길을 막으며 장회나루 일대가 호수를 이뤘다. 강물과 맞닿은 강 언저리는 기묘한 바위들이 죽순처럼 솟아오르며 층층이 탑을 쌓고 있었다. 하늘이 호수인지, 호수가 하늘인지 물과 하늘과 바위가 어우러져 무릉도원이 따로 없었다. 절경이었다.

“언제 봐도 그대로구먼. 조선 팔도에 이만한 곳이 있을까!”

우 갑 노인도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배가 옥순봉을 지나 괴곡나루, 내매나루를 지났다. 뱃머리 오른쪽으로 금수산 봉우리가 보였다. 다시 능강나루를 지나고 도화리를 지나갔다.

“모두들 앉아 뱃전을 잡으시우!”

읍리나루를 지나자 배가 심하게 흔들리며 갑자기 물살이 빨라졌다. 강물 양쪽으로 펼쳐지는 경치에 정신을 빼앗기고 있는 일행들에게 사공이 소리쳤다.

“어은탄이다!”

순갑이도 소리쳤다. 어은탄은 읍진과 북진 사이에 있는 물살이 빠른 곳이었다. 어은탄을 지나면 곧바로 북진이었다.

“풍원이는 나와 충주로 가고, 다른 사람은 어쩌겠느냐?”

강가 언덕 위로 북진 마을이 보이자 우갑 노인이 물었다.

“장석이 형은 나와 충주로 가고, 순갑이 형님은 북진에 배를 댈까요?”

풍원이가 순갑이에게 물었다.

“어르신, 지도 같이 가면 안 될까요?”

순갑이가 우갑 노인에게 물었다.

“내려가는 길이니 별 문제 될 거야 없지만, 걸어 올라오려면 괜한 애쓰는 것 아니겠는가?”

“어르신만 허락해주신다면 지는 상관없습니다요!”

순갑이가 방아개비처럼 머리를 굽실거렸다.   

아침나절 하진나루에서 출발한 지토선이 충주에 당도했을 대는 저녁참을 먹기도 한참 전이었다. 종댕이나루에서 배를 내린 일행들은 배에 실려 있던 짐들을 끌어내려 다시 꾸렸다. 여기서부터는 지게를 지고 마즈막재를 넘어가야했다.

“풍원이 네 짐은 내게 덜어라!”

순갑이가 풍원이에게 짐을 덜어달라고 했다.

“형님도 힘든데, 그만 두시우.”

풍원이가 사양했지만, 순갑이는 빼앗다시피 풍원이 짐을 덜어 자기 지게에 꾸렸다.

일행들이 마즈막재를 넘어 충주 윤 객주 상전에 도착했을 때는 어둑어둑해졌을 무렵이었다. 조산촌에서 충주까지 꼬박 하루가 걸린 셈이었다. 장석이는 조산촌에서 아침에 일어나 저녁에 충주에 도착했다며 믿기지 않는 표정이었다. 만약 걸어서 왔다면 사흘은 족히 걸릴 거리였다. 더구나 지게를 지고 왔다면 하루가 더 걸릴지 이틀이 더 걸릴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 많은 짐을 지고도 하루에 충주까지 왔으니 아무리 힘이 좋은 장석이라도 신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배가 있었으니 가능한 일이었다.

“고단할 테니 오늘은 예서 쉬도록 하거라.”

우갑 노인이 세 사람에게 이르고는 상전 안쪽으로 들어갔다.

“청풍읍내 전들 몽땅 때려 뭉쳐도 여기 상전만 못하겠다. 풍원이 니가 정말 여기서 일을 한단 말이지? 나도 이런데서 일을 해보고 싶다!”

순갑이가 풍원이를 보며 부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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