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이가 심통을 부리듯 앞발로 모래를 걷어찼다. 금빛 모래가 퍼지며 햇살을 받아 반짝거렸다. 모래밭이 끝나는 강가 나루터에 지토선이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일찍 서둘렀는가 보구나?”

“어르신이 직접 오셨습니까?”

지토선에는 우갑노인이 타고 있었다.

“관아에 긴한 볼일이 있어 그렇게 되었다. 그래, 저게 모두 약재들이란 말이지?”

우갑노인이 각기 지고 있는 지게의 짐을 가리키며 물었다.

“저 형님이 약초꾼인데 머느실 약초는 모두 긁어모아 왔습니다.”

풍원이가 우갑노인에게 두출이를 소개했다. 두출이가 꾸벅 인사를 했다.

“귀한 약재를 우리한테 넘겨줘 고맙네. 앞으로도 여기 풍원이를 잘 좀 도와주게나!”

우갑노인이 관상을 보듯 두출이 얼굴을 유심히 살폈다.

“형님들, 짐들을 어서 부리시우!”

엉거주춤 모래밭에 서있던 일행들을 보며 풍원이가 말했다.

“내 정신 좀 보게. 무거운 짐 진 사람들을 세워놓고 수다를 떨다니, 어서 배에 짐을 실으시게!”

“여기 두 형님은 여기서 돌아갈 거고, 이 두 형님은 같이 타고가다 북진나루에 내려주면 안될까요?”

풍원이가 익수와 두출이는 하진나루에서 헤어지고, 장석이와 순갑이는 북진나루까지 데려다주면 어떻겠냐고 물었다.

“내려가는 길인데 안 될 게 뭐 있겠느냐? 그리 하거라!”

우갑노인의 허락이 떨어졌다. 지토선이 뱃머리를 강하류로 돌리며 서서히 하진나루를 떠나기 시작했다. 강가로 쌓인 모래언덕이 높아지며 왼쪽 뒤로 단양이 점점 사라졌다.

“어르신, 단양 갔던 소임은 잘 보셨는지요?”

풍원이가 창막이에 앉아 단양 쪽을 바라보고 있던 우갑노인에게 물었다.

“관아와 하는 장사야 돈 놓고 돈 먹기 아니겠느냐?”

개인이 사사로이 하는 장사는 살벌한 전장판이었다. 속고 속이는 것이 난무하고, 잠깐의 실수로 큰 손해를 볼 수 있는 것이 장사였다. 그에 비하면 관아와의 거래는 그야말로 ‘콩 주어먹기’였다. 제 물건을 팔려고 서로 악다구니를 벌일 필요도, 조금이라도 더 남기려고 온갖 감언이설로 남을 꾀일 필요도 없었다. 손해를 볼까 염려할 것도 없었다. 설령 손해를 본다 해도 관아에서 그 손해를 메꿔주었다. 그러니 거래의 성사가 힘들뿐 한 번 발길이 트이면 만년구짜였다. 충주 윤 객주 상전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인근 고을의 관아와 암암리에 거래를 하고 있었다.

“이번에 납품한 물산들은 뭔가요?

“잡곡 삼백 석이다. 그걸 옮기느라 달포나 걸렸다. 이번 행보로 모두 끝이 났다.”

“관아에서 그것도 삼백석이나 뭐에 필요하답니까?”

“관아 아전들이 장사해먹으려고 그러는 게지.”

“장사꾼도 아닌 아전들이 뭔 장사를 하나유?”

관아에 다니는 아전들이 장사를 한다니 이상한 생각이 들어 장석이가 물었다.

“환곡 해처먹는거지 뭐여!”

순갑이가 지청구를 줬다.

“지난 봄가뭄이 극심해 밭곡도 다 타죽은 데다 보릿고개까지 닥쳐 백성들이 굶어죽겠다고 아우성이니 어쩌겠느냐. 나라에서 보관해놓은 환곡은 누가 해먹었는지 이미 예전에 텅텅 비었는데 구제할 곡식은 없으니 모가지 날아가기 전에 사창은 채워놔야지. 명목은 사창을 채우려 한다지만, 남이 다 해먹은 것을 그놈들이 채워놓을 리 만무하지. 서류에만 남겨놓고 빼돌려 고을민들에게 꿔주고 장리를 받을 속셈 아니겠느냐?”

“그럼, 상전에서 삼백 석 값은 어떻게 받나요?”

“반은 돈으로 받고 반은 가을에 단양 특산품으로 받기로 했다.

“돈이야 그렇지만, 나머지는 특산품으로 그것도 가을에나 받는다면 특산품 값이 가을 돼서 어떻게 될지 모를 일이고, 만에 하나 값이 이전보다 떨어진다면 손해 볼 수도 있는 게 아닌가요?”

“그러니까 그런 위험부담을 줄이려고 본전에 이득금을 넉넉하게 붙이는 게 아니냐.”

“그렇다면 그건 누가 부담하나요?”

“그걸 누가 하겠느냐. 환곡 빌려주는 아전이 하겠느냐, 급해서 빌려먹은 고을민이 하겠느냐?”

이래저래 죽어나는 것은 백성들이었다. 그렇다고 당장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인데 빌리지 않을 수 없었다. 갚을 걱정은 나중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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