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번역가

유수(劉秀)는 지금으로부터 2천 년 전 한(漢)나라 유씨의 후손이다. 평소 성격이 호탕하나 일의 결정에 있어서는 늘 신중한 편이었다. 젊을 때는 지금의 검찰총장에 해당하는 집금오가 되기를 원했고, 같은 마을에 사는 음려화라는 어여쁜 아가씨를 아내로 맞는 것이 가장 큰 꿈이었다.

그 무렵 왕망이 권력을 찬탈하여 신나라를 세웠다. 하지만 새로운 왕조는 수탈과 세금이 과하여 전국적으로 반란이 들끓었다. 낭야 지역에서는 여모(呂母)라는 노파가 사재를 털어 무리를 모아 반란을 일으켰다. 그녀는 단지 낭야 현령에게 무고하게 살해된 아들의 복수를 위한 것이었다. 현령을 죽인 뒤에 그녀는 곧 사망하였다. 하지만 그 세력은 해산되지 않았고 점점 세력이 커졌다. 자신들을 정부군과 구별하기 위해 항상 눈썹을 붉게 칠했다. 이를 적미군이라 한다. 또 그 무렵 왕광이라는 자가 가난한 백성들을 모아놓고 녹림산을 근거로 반란을 일으켰다. 이들을 녹림군이라 한다. 그 당시 정부군인 태사군과 경시군은 무리한 식량증발로 백성들이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래서 백성들은 적미군과 녹림군에 대해 우호적이었다.

유수는 형 유인이 만든 용릉군에 가입하여 반란의 대열에 참여하였다. 이후 용릉군은 녹림군과 연합하여 세력을 키웠고 경시제를 황제로 옹립하였다. 이때 왕망이 경시제 제거를 위해 대군을 출전시켰으나 유수의 병법에 걸려들어 번번이 대패하고 말았다. 이로 인해 유수라는 이름이 천하에 알려지게 되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경시제가 유수를 견제하여 살해하고자 했다. 하지만 유수를 추종하는 무리들이 점점 늘어 결국 정권은 유수가 차지하고 말았다.

이어 유수는 왕망의 신나라를 멸하고 한나라를 재건하여 황제에 올랐다. 그가 바로 광무제이다. 그러나 즉위 초기에는 아직 천하가 평정되지 않은 상태였다. 광무제에게 복종하지 않는 지방 세력이 많았다. 5년이 지나자 천하통일의 골격이 갖추어졌다. 그때는 감숙 지방의 외효, 촉 지역의 공손술 둘만이 저항 세력으로 남아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외효는 자신의 아들을 광무제에게 인질로 보내 곧 귀순할 의사를 내보였다. 따라서 광무제의 입장에서 그다지 근심거리가 되지 못했다. 또 공손술의 군대는 먼 변방에 있어 한나라 중앙까지 공격할 여력이 없었다. 그래서 광무제는 계속된 전쟁으로 인해 군대가 피로한 까닭을 알기에 이젠 쉬어도 좋다고 했다. 그래서 장수들에게 명했다.

“외효와 공손술 두 사람은 당분간 내버려 둬도 문제 될 것이 없다. 대신 우리 군대가 쉬는 동안 군대 식량을 비축하고 국력을 키우면 저들은 저절로 무너지고 말 것이다.”

3년 후 광무제는 충분히 휴식한 군대를 이끌고 외효와 공손술을 공격하여 차례로 정벌하였다. 이로서 천하통일이 이루어졌다. 이 이야기는 ‘후한서(後漢書)’에 실린 고사이다. 

치지도외(置之度外)란 생각 밖에 둔다는 뜻이다. 불필요한 근심거리나 상대도 되지 않는 적을 마음에 두지 않는다는 의미로 쓰인다. 새로운 정부는 큰 물줄기를 잘 선택해야 한다. 민심을 달랜다고 작은 물줄기를 상대하다보면 국고가 바닥나고 만다. 큰물이 흐르면 작은 물은 덩달아 젖는다는 이치를 잊지 말 것이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