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영철 아동문학가

입추가 지나자 주위가 변했다. 우선 하늘이 높고 맑아졌으며, 바람도 제법 선선하다. 연구실 4층 창문 앞 은행나무 위에서 힘차게 울던 매미도 이제는 떠날 준비를 하는지 노랫소리에 힘이 없다. 내친김에 창문을 열고 보니 은행잎도 어느새 노르스름하다. “참, 세상 이치는 한 치 오차도 없구나”라고 혼자서 중얼거려 본다.

젊었을 때 나를 발목 잡던 속담이 있다. 첫째가 ‘가다가 아니 가면 아니 감만 못하다.’라는 속담이다. 일을 중도에 포기하는 것을 경계하는 속담 일게다. 그러나 내 경험으로는 이 속담이 꼭 옳은 것은 아니다. 일을 하다 보면 이런저런 사유로 애초 상황과 많은 차이가 나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에는 과감하게 목표를 수정하든지 포기해야 한다. 둘째는 ‘한 우물을 파라’는 속담이다. 이 속담 역시 이것저것 쑤석거리지 말고 한 가지 일에만 매진하라는 뜻이다. 그러나 수맥을 잘못 잡아 아무리 깊게 파도 물이 나오지 않는데 계속 한 우물을 파는 것이 또한 옳은 선택일까? 생각해 본다.

2학기 개강이 시작되자 4학년 학생들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한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서서히 엄습해 오기 때문이다. 지난 학기 때만 해도 아직 1년이 남았다는 생각으로 느긋하던 학생들이다. 언론에서 자주 거론되는 청년실업 문제가 남의 일이 아니라 자신들의 일이라는 것을 이제야 피부로 느낀 것이다. 그래서일까, 근래 들어 학생들이 자주 나의 연구실을 찾는다. 그들이 생각하기에는 내가 학교에 오기 전에 농협은행에 근무했던 경험이 다른 선생과 차별화된다고 본 것이다.

학생들의 많은 고민 중 하나는 지금까지 취업 준비를 하던 목표를 바꾸고 싶은데 시기가 너무 늦은 것은 아닌지? 또 새로운 목표가 자신에게 맞는 것인지? 등을 물어본다. 그들 중 다수는 이미 자신이 결정 하고는 그것에 대한 확증을 나에게 듣고 싶어 온 것이다. 그래서 특별한 잘못이 없으면 그들의 결정에 맞장구를 치며 격려와 용기의 말을 해 준다.

어떤 사람은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냐’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인생은 하나의 과정이기에 얼마든지 바꾸고 포기할 수 있다고 본다. 가다가 중지하면 적어도 가던 길만큼 나에게 득이 되는 것이지 어찌 안 간 것만 못하겠는가! 지금 포기했지만 내가 걸어온 길에서 얻은 지식과 정보는 언젠가는 나에게 커다란 자산으로 남을 것이다.

국가도 마찬가지이다. 아무리 좋은 정책도 추진하는 과정에서 많은 시행착오도 있을 수 있고, 어쩔 수 없는 경우의 수가 나타나 고민에 빠질 수도 있다. 이럴 경우 어떻게 하여야 할까? 앞으로 우리가 감당할 큰 손실이 눈앞에 보이는데 이미 지급한 매몰비용만 생각하여 무조건 강행하는 것이 옳은 일일까? 또 많은 사람이 잘못된 정책이라고 말하는데 정책 입안자의 자존심과 오기 때문에 그대로 밀고 나가려 한다면 이 또한 옳은 판단은 아니다. 포기도 선택의 하나이다. 많은 국민이 피해를 보기 전에 세상의 웃음거리가 되기 전에 포기할 것은 과감하게 포기하는 것이 다수에게 행복을 주는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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