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원이의 이야기가 끝났을 즈음해서 강변을 따라 웃하진과 아랫하진이 나타났다. 마을 집들은 강물과 떨어져 둔덕 위에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그리고 마을 아래 남한강가 모래사장 끝머리로 하진나루가 보였다. 하진은 마을 아래에 나루가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었다. 하진나루에는 조산촌과 단양 사이를 흐르는 남한강을 건너주는 나룻배가 있었다. 나룻배 덕분에 두 마을 사람들은 서로 왕래가 가능했다. 하진나루는 두 마을을 이어주는 역할 외에도 마포나 용산에서 올라오는 짐배들이나 남한강 상류의 여러 고을에서 내려오는 곡식 배들이 잠시 쉬어가는 중간 기착지로 이용되기도 하였다.

“풍원이 동생 저-게 뭔지 아나?”

두출이가 가리키는 강가 절벽을 보니 물을 뚫고 치솟은 하얀 바위마다 파란 관목들이 붙어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그림 같네요.”

“저게 벼랑이 다 도장나무여.”

“땅에 있는 것은 많이 봤어도 저렇게 벼랑에 사는 건 첨이네요.”

“여기서 보니까 그렇지 가차이 가서 보면 정말 볼만해!”

“흔한 도장나무가 뭐 볼게 있데요?”

“도장나무야 흔하지. 그런데 저기 있는 도장나무들은 하나하나가 명품이여!”

“두출이 형님, 그깟 도장나무가 도장나무지, 명품은 뭔 명품이란 말이우?”

“여기 하진에서 나는 도장나무는 한양에까지 뜨르르 소문이 나있어!”

“뭣 땜에?”

“분재로 관상용으로 대가집들에서 치장하느라.”

“채까치 같이 가느당당한 도장나무가 뭔 분재가 되고 관상용이 된다요?”

“그게 아녀. 가차이 가서 보면 밑동이 소 넓적다리보다 굵고 기기묘묘하게 생긴 것들이 숱해. 언젠가는 줄기가 용처럼 휘감기며 뿌리가 한아름이나 되는 것을 캤는데 임금님한테 진상까지 했디야. 바위틈바귀에서 근근이 살며 그렇게 크려면 천년도 더 묵었을 거라고 하더구먼. 그러니 한양 높은 분들이 방안에 하나씩 들여놓고 감상을 하려고 관아에 너도나도 청을 넣는 그걸 캐 바치느라 여기 사람들이 곤욕을 치뤘디야. 그 바람에 벼랑에 매달려 그걸 캐려다 떨어져 몇몇이 죽기도 하고 반신불수가 된 사람도 숱하다는구먼.”

익수 말이 순전히 꾸며진 것은 아니었다. 이 동네에서 도장나무라고 부르는 회양목은 예전부터 단양의 특산품이었다. 회양목은 재질이 단단하여 모양을 내는 세공재나 목판, 호패, 도장을 파는 재료로 쓰였다. 또 나무모양이 아름다워, 먹고 사는데 걱정이 없는 벼슬아치나 부잣집들 마당을 꾸미는데도 많이 이용되었다. 그런데 단양 인근에 자생하는 회양목은 특히 관상용은 사람들 손이 닿지 않는 강가 절벽에 자라고 있어 희귀한 모양들이 많았다. 호사가들은 그런 단양의 회양목에 갖은 이름을 붙여 곁에 두고 보기를 원했다. 그러다보니 이를 아는 양반들은 단양 회양목 분을 하나 갖는 것을 무슨 덕목 차리듯 했다.

“도장나무가 하도 흔하니 대접도 못 받지만, 저 나무도 잘만 쓰면 요긴한 약재가 돼!”

“익수형, 도장나무도 약으로 쓰인단 말여?”

“그럼. 독초도 약이 되는데 약 안 되는 것이 어딨어. 도장나무 줄기나 잎을 햇볕에 말려두었다가 달여서 먹으면 통증이나 기침을 잦아들게 하고, 몸에 바람이 들어 생기는 병을 없애주고, 남자들 거시기에 생기는 병, 팔다리 수시고 아픈데, 통풍, 이 아픈 데 두루두루 효험이 있지.”

약 이야기만 나오면 익수는 일사천리였다.

“저 흔한 것이 그렇게 좋은 약인지 미처 몰랐네.”

“흔하면 귀한 줄 모르고 막 하는 게 세상 이치 아녀?”

“마누라도 옆에 있을 때는 모르다가 친정이라도 가봐. 당장 끼니 챙기는 것도 마누라가 아쉽지. 그러니 있을 때 잘 햐!”

순갑이가 아랫사람 타이르듯 동생들을 훈계했다.

“형님은 밥 때문에 장가 갔수?”

장석이가 물었다.

“그럼 밥 아니면 마누라가 뭐시에 필요하디야?”

“그럼 형님은 형수님이 귀한 게 아니라 밥 때문에 형수님이 필요하니 밥을 귀히 여겨야겠네요?”

풍원이가 순갑이를 놀렸다.

“상투도 못 튼 놈들하고 뭔 깊은 얘기를 하겠냐?”

순갑이가 풍원이 이야기를 묵살해버렸다.

“그래도 형님들이야 성수님들이 있지만, 풍원이와 난 마누라가 없으니 귀한지 어쩐지도 모르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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