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풍원이를 만나 올해 운수 대통할 것 같어!”

큰머느실 익수가 귀에 단소리를 했다.

“형님들 같은 귀인들을 만나 내가 대박이 날 것 같어요!

풍원이도 익수를 따라 단소리를 했다.

“내는 풍원이 만나 날건달이 다 됐수다!”

“형은 뭔 뜬금없는 소리요?”

“여적지 땅만 파다, 지게를 지고 이렇게 천지사방을 유람하고 다니니 건달이 아니고 뭐겄냐?”

장석이가 우스갯소리를 해도 웃는 사람이 없었다. 서로들 낯이 설기 때문이었다.

“앞으로 자주 볼 얼굴들인데 통성명은 나누고 뭐든 하십시다!”

풍원이가 어색함을 지우려고 서로 이름부터 알고 일을 하자고 말했다. 서로들 어정쩡한 상태에서 일을 하자니 상대방 눈치를 살피느라 놀리는 손들이 부자연스러웠다.

풍원이, 장석이, 순갑이, 익수, 두출이, 이렇게 다섯 사람이 한 자리에 모이기는 처음이었다. 서로들 수인사는 나눴지만 아직은 서먹서먹했다. 풍원이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서로의 관계가 편편찮았다. 가장 큰 까닭은 호칭이었다. 서로 얼굴들을 보면 누가 연장자인 것은 알 수 있었다. 그렇다고 초면인데 함부로 하대를 할 수도 없었다. 나이가 적은 사람들도 윗사람이 존대를 하니 여간 어색한 것이 아니었다. 우선 나이를 밝히고 호형호제부터 정해야 했다.

“난 기미생이오.”

순갑이가 제일 먼저 자신의 나이를 밝혔다.

“우리 둘은 을축생이우.”

익수가 동갑인 두출이 생까지 함께 말했다.

“장석이 형은 스물하나니 기사생이고, 난 열여덟 임신생이오. 그럼 순갑이 형님이 젤 위고, 그 다음이 익수·두출 형님이고, 다음이 장석이 형이구려. 지가 젤 꼬두바리네유. 앞으로 네 분 형님들 깍듯하게 모시겠습니다요. 절 받으시우!”

풍원이가 장난스럽게 네 사람을 향해 돌아가며 읍을 했다.

“호형호제도 맺고 절도 받았으니 술이 빠지면 되겠우. 아마도 오늘 먹으려고 그게 내 눈에 뜨였나 보우!”

두출이가 몇 년 전에 캐서 담가놓았다는 산삼주 항아리를 들고 나왔다.

“두출이 형님, 산삼주 값은 못 내오. 대신 하수오하고 다른 약재들 값은 후하게 쳐 드리리다. 앞으로도 모든 약재는 형님이 맡아 잘 좀 해주시오, 조산촌 쪽은 두 분 형님들만 믿습니다!”

풍원이가 표주박으로 술을 떠 익수와 두출이에게 권했다.

“풍원이, 나도 같이 따라다니며 행상을 하면 안 될까?”

순갑이가 풍원이에게 부탁했다.

순갑이는 진작부터 행상을 따라다니고 싶었다. 가진 땅도 농사거리도 변변찮은 순갑이가 밥이라도 굶지 않으려면 땅을 파서는 어림도 없었다. 북진에서 반짝 장이 열릴 때마다 자신의 집에서 머물던 보부상들을 보고 장사를 해봤으면 하고 생각은 했었다. 그러나 장사가 맨손만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밑천이 있어야했다. 밑천이 문제였다. 밑천은커녕 구린 엽전 한 닢, 팔아먹을 낱알 한 줌도 없었으니 물건을 사서 장사를 한다는 생각은 애당초 허황한 꿈일 뿐이었다. 그러다 풍원이를 만나며 어쩌면 밑천을 들이지 않고도 장사를 할 수 있겠다는 희망이 생겼다.

“순갑이 형님은 조금만 기다려보세요. 내 생각에는 북진 형님 집에서 장사뿐 아니라 할 일이 많을 듯합니다. 이번 일만 마무리 되면 여러 가지를 맞춰보고 뭘 해야 할지 같이 생각해보십시다.”

풍원이가 일단 순갑이에게 기다릴 것을 권했다. “풍원아, 우리 식구들 목줄이 너한테 달렸다, 난 너만 믿는다!”

순갑이는 아예 풍원이에게 목을 맸다.

“나도 풍원이 동생만 믿어!”

익수도 풍원이에게 매달렸다.

“등골이 빠져도 물건은 내가 다 져나를 테니, 형님들은 장사만 해 놓으슈! 난, 풍원이한테 품값이나 받을라요.”

장석이가 힘자랑을 하며 으스댔다.

“나도 이쪽에서 나오는 약초들은 모두 거뒀다가 동생한테 넘겨줄 테니 약초 금이나 잘 좀 쳐주거라!”

술이 여러 순배 돌자 거나해진 두출이도 풍원이를 보며 입을 뗐다.

“형님들, 고맙습니다! 저도 윤 객주 상전에서 일하는 일꾼일 뿐입니다. 곧 독립해서 제 전도 차릴 작정이지만, 아직은 행상을 하며 장사를 배우고 있으니 형님들한테 해줄 일이 별반 없습니다. 그렇지만 거리골에서 있었던 오늘 일과 형님들이 한 말들 잊지 않을게요. 반드시 형님들과 같이 장사하고 같이 잘 살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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