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득이 말을 듣고 보니 그도 그랬다.

풍원이 생각은 청풍에서 가까운 마을은 수시로 드나들며 직접 장사를 하고 조산촌처럼 거리가 먼 곳은 중간 매수인을 두면 훨씬 품을 줄이고 상권도 확보할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그런데 그렇게 하려면 한두가지 문제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중간 매수인들을 청풍으로 불러들일 수도 없었다. 번뜻하게 전을 가지고 있다면 몰라도 풍원이도 장석이네 집에 겨우 물건을 쌓아놓고 떠돌며 행상을 하고 있는 처지였다. 여러 가지로 해결해야할 당면과제가 많았다.

“두출이 형님, 일단 귀한 약재나 그런 걸 캐면 딴 데로 넘기지 말고 기별을 주시오. 앞으로 우리와 함께 거래를 하십시다.”

풍원이가 구체적인 것은 나중에 이야기하기로 하고 거래할 물건이 생기면 자신에게 넘겨줄 것만 부탁하고 한 발 뒤로 물러섰다.

“여기들 있었구먼! 여태 짐들을 꾸리는가?”

그때 익수가 마당을 들어섰다.

“마침 잘 오셨수. 그렇잖아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우리 집에 부려놓은 짐들은 뭔가?”

익수가 물었다.

“아까는 형님 댁에 아무도 없어서 그냥 올라왔습니다.”

“요새 한참 마늘도 캐야하고, 땅콩도 뽑아 널어야 하고, 깨도 쪄야하는데 낮에 집에 붙어있을 수 있남.”

자신을 형님이라고 부르는 풍원이의 호칭이 당황스러웠는지 익수가 어색해하며 어정쩡하게 말했다.

“형님, 장사 한 번 안해 보실랍니까?”

“농사 일도 손이 없는데 어느 결에 장사를 하나.”

“동네 장산데 종일 지킬 일 있겠습니까? 사러 와야 조석으로 밖에 더 오겠습니까. 틈틈이 하면 되지요.”

“내가 물건들을 살 형편이 없는데 그건 어찌 하나?”

“물건은 제가 대 드릴 테니 그건 걱정마시우! 형님은 이 동네에서 나는 산물과 바꿔 팔기만 하시구려. 그리고 물건이 다 팔렸거나 필요한 것이 생기면 기별을 하세요. 그럼 우리가 새로 물건도 가져오고 형님이 사놓은 물건도 져가겠습니다.”

“그러다 밑지면 어쩌나. 내가 다 덮어 써야하는 건 아닌가?”

익수는 이모저모 걱정이 많았다. 이제껏 농사만 지으며 풍년이 들면 풍년 든 대로 흉년이 들면 흉년 든 대로 고스란히 자신이 감내하며 살아온 익수로서는 당연했다. 더구나 일을 해야 뭐라도 먹을 수 있다는 생각이 뼛속까지 박혀있는 농부가 일도 하지 않고 남의 물건을 팔고 사며 하는 일로 밥을 먹을 수 있는지도 의문이었다.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걱정이 되는 것은 장사를 하다 손해라도 나는 날이면 뒷감당을 어찌해야할까 그것이 제일로 두려웠다.

“형님, 밑질 일이야 뭐 있겠습니까? 설령 한두 번 밑진다 해도 장사해서 복구하면 되지요. 자꾸 하다보면 이력도 생기겠지요.”

풍원이가 불안해하는 익수를 다독였다.

“그럼 한 번 해볼까?”

그제야 익수가 입질을 했다.

“형님은 다른 걱정일랑 말고 조산촌 일대를 맡아 잘 여기서 생산되는 모든 물산들을 갈무리해주시오. 그러면 그에 대한 답례는 흡족하게 해드리리다.”

풍원이가 미끼를 던졌다.

“그럼 한 번 해보겠네!”

익수가 결심을 굳히고 확답을 했다.

익수로서도 손해 날 일은 없었다. 풍원이가 물건도 무상으로 대준다하고, 장사를 하다 손해를 본다 해도 물어낼 일도 없고, 종일 물건을 팔러 다니는 것도 아니고, 익수는 하던 농사일을 하며 틈틈이 팔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땅 짚고 헤엄치기보다 수월한 일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풍원이로서도 잘 알지 못하는 남의 마을을 노다지 물어가며 찾아다니는 것보다 마을 사정을 잘 아는 그 지역 토박이를 이용하면 훨씬 효과를 높일 수 있었다. 더구나 매일처럼 무거운 짐을 지고 이 마을 저 마을로 며칠씩 돌아칠 일도 없었다. 익수가 장사를  해서 물산들을 모아놓으면 가끔씩 들려 청풍으로 옮기기만 하면 될 일이었다. 서로에게 ‘꿩 먹고 알 먹고’,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격’이었다. 이런 호조건의 거래를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익수 형님, 일단 집에 내려놓은 물건들하고 요새 한창 수확하고 있는 마늘, 땅콩 깨 같은 작물들을 수매해 놓으시오. 그러면 한 삭쯤 뒤에 들리겠수. 혹여 그 전이라도 팔 물건이 떨어지거나 급히 찾는 물건이 있으면 기별을 해주시오. 그럼 득달같이 가져다 줄 테니.”

본 전도 없는 모양새가 우습기는 했지만, 풍원이 관리 아래 전이 처음으로 생긴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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