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 그깟 약 뿌리 하나를 가지고 뭘 그리 서두르십니까? 더구나 그 산골짜기에 찾아올 사람이나 있겠습니까?” 

풍원이는 그토록 서두르는 우갑 노인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눔아, 장사는 그런 게 아녀. 때가 왔을 때 바로 잡지 못하면 다시는 오지 않을 수도 있어. 그게 운대라는거여! 물건을 봐야 알겠지만 네가 몇 날 며칠을 장사해서 벌어온 저 물산들보다 그 약 한 뿌리가 몇 배의 이득을 더 남길 줄도 모르는 일이다. 경우에 따라 임자만 제대로 만나면 수십 냥이 돈이겠느냐. 그러니 어찌 서두르지 않을 수 있겠느냐?”

“알겠습니다, 어르신. 그런데 새우젓하고 마른 해산물 좀 주실 수 있으신가요?”

“그건 왜?”

“장사를 다니다 부탁받아놓은 데가 있어서…….”

우갑 노인은 한시가 급해서 그러는데, 주문받아놓은 물건을 챙기려하니 풍원이가 미안한 마음에 지밋거리며 말했다.

“수십 냥이 왔다갔다하는 판에 그깟 돈 몇 푼이 눈에 보이느냐?”

우갑 노인이 풍원이 표정을 살피며 넌지시 물었다.

“돈도 돈이지만, 다음번에 올 때 꼭 가져다주겠다고 약조를 했으니 기다릴 것 같아서 그럽니다.”

“돈을 버는 것도 중하지만, 장사꾼이 무엇보다도 먼저 지켜야할 것은 신의다! 물건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다면 구해다주는 게 당연하지, 뭘 미안해하느냐. 소금과 함께 배 갈 때 실어 보내줄까?”

“아닙니다. 조산촌으로 가져갈 것이니 직접 지고 가겠습니다요.”

풍원이와 장석이가 새우젓 한 독과 북어, 미역 같은 해산물에 엽전 닷 관을 꽁꽁 싸가지고 안림에서 마즈막재를 넘었다. 청풍을 들를 필요가 없으니 꽃바위, 종댕이나루를 거쳐 지동, 후산, 황석으로 해서 북진으로 직접 갈 생각이었다. 그렇게 가면 질러가는 길이라 반나절은 단축될 것이고 해가 떨어지기 전 북진에 당도할 수 있을 것이었다. 충주 윤 객주 상전에서 점심나절에 떠났는데도 두 사람이 서둘러 걸은 덕분에 북진 순갑이네 집에 도착했을 때는 아직도 어스름이 내리려면 한참이나 남아있었다.

북진에서 하룻밤을 보낸 풍원이와 장석이는 순갑이와 함께 길을 떠났다. 세 사람은 절밋재를 넘어 조산촌 큰머느실에 들려 익수네 집에 새우젓 독과 마른 해산물을 내려놓고 거리골 두출이네 집으로 서둘러 올라갔다.

“그새 워쩐 일이시우?”

다녀간 지 며칠 지나지도 않아 또 나타난 풍원이를 보고 두출이가 무슨 일인가 싶어 물었다.

“형씨, 약초를 사러 왔수.”

장석이가 풍원이 대신 대답했다.

“이 양반은 뉘시우?”

“이 분은 북진 사는 순갑이 형님인데 서로 알아두면 좋을 듯해서 함께 왔습니다. 그건 그렇고 지난 번 그 하수오는 아직 있답디까?”

풍원이는 두출이에게 물어보는 순간에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마음이 졸아 들었다.

“그것 때문에 오셨구먼유. 왜, 어디서 알아보셨우?”

그제야 두출이가 찾아온 이유를 알아차리고 뜸을 들였다.

“있는가요?”

풍원이가 몸이 달아 재차 물었다.

“내가 팔지를 않았는데, 그게 발 달린 것도 아니고 어딜 가겠우!”

 두출이가 능청을 떨며 풍원이를 놀렸다.

“지난번에 그 하수오, 쌀 두서너 섬은 받아야한다고 그랬지요? 물건이 좋으니 상상품 쌀값으로 쳐서 열 닷 냥 주면 되겠수?”

“그렇게는 안 되겠우!”

“아니, 그새 맘이 바뀌었다는 거요?”

“열 닷 냥이면 하품 쌀 다섯 섬은 너끈히 살 돈이고, 상머슴 일 년 새경이우. 그러면 죄 받어유. 이 동네 처녀 아이들 시집가도록 쌀 서 말도 못 먹고 간다는 말이 있우. 그런데 산에서 이틀 일해 캐온 것을 그렇게 많이 받으면 욕심 부린다고 벌 받어유. 사람이 분수껏 살아야지 그거 다 받으면 산신령님이 다시는 내게 그런 약을 내려주지 않을 거우다.”

두출이는 더 받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덜 받겠다는 것이었다. 세상에는 욕심 없는 이상한 사람도 있었다. 거리골 두출이가 그런 사람이었다.

“하수오 말고 다른 약재들도 내놔보시오.”

“약은 사람들 병을 고치는 물건이라 정성을 다해 갈무리를 해야 하우다. 이런 것들은 어디 내놔도 정말로 상상품인 것들이우. 봐야 뭘 알겄우?”

두출이가 온 집안을 뒤지며 약재들을 내왔다. 그러더니 풍원이를 보고 또 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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