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규 충주 주덕고 교사

들어오면 산이 보이지 않는다. 더구나 산의 모습이나 오를 방법에 대해 충분히 살피거나 고민하지 않은 상황에서 숲에 들어섰다면 충북의 행복교육지구 사업을 시작하는 우리의 상황이 꼭 이와 같다. 행복씨앗학교란 이름으로 학교 안의 혁신을 돌파해 나가는 데도 버거웠던 충북의 교사들에게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경기도나 서울에서 진행되고 있는 혁신지구 또는 꿈의 학교 등은 일단 오르던 이 봉우리를 넘고 나서 생각해 봐야 할 또 다른 봉우리였다. 그런데 도교육청과 7개 기초지자체의 MOU체결로 준비는 커녕 구체적인 고민도 없는 상태에서 행복교육지구사업은 과제처럼 뚝 떨어졌다. 적어도 충주는 그랬다.

언젠가는 올라야 할 산이었고 가야할 방향이라 생각했기에 거부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막막했다. 아무런 밑그림도 그릴 수 없었다. 배짱이 맞는 몇몇 교사들끼리 모여 ‘1년이라도 준비기간을 주었더라면’하고 한탄을 했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황임을 알고 있었다. 아무튼 숲 입구 소매군락에 들어섰다. 막연한 방향을 어림하며 덩굴 하나 헤치고 발자국 하나 찍는 심정으로. 교육청 장학사가 업무를 총괄하고 ‘학습연구년’이라는 다소 애매한 입장인 나는 함께 참여할 지역사람들을 규합하는 것으로 역할을 분담했다. 3월 초, 내 관계망 속에 있는 지역사람들부터 만나서 설명하고 설득하기 시작했다.

아, 그런데 그동안 내가 얼마나 오만하고 편협했던가! 잘 보이지 않던 지역사람들이 눈을 좀 더 크게 뜨고 보니 많고 많았다. 만나는 사람마다 나보다 더 우리 교육 문제의 본질을 더 잘 파악하고 있었다. 지역의 교육공동체에 대한 열망이 더 컸으며 다 나름대로의 꿈을 가지고 있었다. 심지어 이미 구체적인 실천을 하고 있는 분들도 많았다. 청소년 협동조합을 꾸려나가고 있는 분들, 교육협동조합을 준비하고 있는 분들, 개인적 역량으로 청소년 봉사단체를 이끌고 있는 분, 지역의 환경과 먹거리에 대한 교육적 접근을 고민하고 있는 분들, 다양한 청소년 자율동아리를 지도하고 있는 단체, 학교밖 청소년 문제를 고민하고 있는 분, 초등학교 방과후 품앗이 놀이공동체를 실천하고 있는 학부모, 지역을 노래하고 이야기하는 작가들, 교육적 참여로 후배 기르기를 원하는 문화예술인들 등등. 천만 촛불이 어떻게 모였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하는 역동성이 지역사회 곳곳에 산재해 있었다. 다만 관과 학교의 보이지 않는 벽에 절망한 경험을 가지고 있었으며 상호 소통할 수 있는 연대의 틀이 없어 개별적으로 흩어져 있었다.

산에 오르기를 소망하는 사람은 몇몇이 아니었다. 수많은 지역사람들이 소망하고 있었지만 그 소망을 함께 나누지 않고 있었을 뿐이다. 이제 첫 발을 떼고 있는 행복교육지구사업이 지역문화로 뿌리내리기 위해선 이 에너지를 마음껏 발산할 수 있는 판을 만들어야 한다. 실질적 거버넌스의 틀을 만들어 이들을 명실상부한 주체로 인정해야 한다. 그것이 지자체와 교육청이 할 일이다.

각자의 마음속에 그리고 있는 산의 모습은 다를 수 있다. 때문에 여럿이 함께 가다보면 서로의 방향만 고집할 수도 잘못된 방향으로 접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지역교육공동체라는 건강한 에너지만 잃지 않으면 어쨌든 앞으로 나갈 것이니 함께 가기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 서로의 방향으로 흩어지는 순간 우리의 공동체의 꿈은 무산될 것이기 때문이다. 단추 하나 잘못 끼웠다고 옷을 못 입는 것은 아니다. 인간세상에서 곡선이 직선보다 아름다운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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