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청주예총 부회장

며칠 전 과로로 인해 일주일간 병원에 입원했다. 사경을 헤매면서 한줄기 빛으로 떠오른 글귀가 있었으니, 그것은 몸에 병이 없기를 바라지 마라, 몸에 병이 없으면 탐욕이 생기나니, 그러므로 성인이 말씀하시기를 “병고로써 양약을 삼으라!”고 하셨느니라! 였다.

세상사는 이치란 오묘해서 ‘하나를 잃으면 하나를 얻는다’ 말이 가슴에 다가왔다.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과 며느리, 딸, 귀여운 손자들! 그리고 밤새워 환자를 돌보는 병원의 직원들! 이 모두가 더없이 소중하고 고맙게 가슴으로 다가왔다. 미처 깨닫지 못하던 것들이 하나 둘씩 소중하게 느껴졌다.

얼마 전 고향에서 새벽 테니스를 치고 친구들과 함께 해장국집엘 갔다. 마침 그 집은 필자와 매우 인연이 깊은 집이다. 60여 년 전 중학교 때 절친했던 친구의 집이다. 어쩌다 들르면 그 친구의 어머니가 주시는 국밥이 어찌나 맛있었는지! 얼큰한 국물 맛이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다. 지금은 그 친구의 형수가 대를 이어 2대째 내려오는 소박한 해장국집이다.

그런데 황당한 경험을 했다. 가만히 따져보니 그 집에 들른 지도 벌써 십여 년이 됐다. 해장국집 주인인 친구의 형수가 필자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게 기억력이 없는 것도 아닐 텐데! 알고 보니 문제는 필자에게 있었다. 그사이 필자의 체중이 10kg이나 빠졌으니 몰라 볼 수밖에! “몸이 하도 작아 져서 저도 몰라봤어요!”라는 형수님 말씀은 엄청난 충격이었다.

세월은 무심하다더니! 필자만 나이 먹는 게 아니다. 제자들도 대부분은 ‘지천명’을 넘어서 ‘이순’을 바라보는 나이들이 됐다. 그들로부터 ‘선생님이 보고 싶다’고 전화가 온다. 마음 같아서는 얼른 만나고 싶지만, 초췌하게 변한 몰골 때문에 실망을 줄까 만나기가 꺼려진다.

요즘은 SNS시대에서 통용되는 좋은 말들이 참으로 많은 것 같다. 그런데 필자가 가장 듣기 거북한 말이 있다.  “어디 아파!?” “얼굴이 틀렸어요!” 등이 그것이다. 필자는 이것을 ‘우담(憂談:근심해 주는 말)’이라고 명명하고 싶다. 이것은 아픔 사람에게는 ‘약’이 아니라 오히려 ‘독’으로 들린다.

그러면 무슨 말이 처방일까? ‘덕담(德談)’이다. 칭찬과도 통한다. 칭찬이 사실에 근거한 말이라면, 덕담에는 때때로 교묘한 역설과 방편이 들어 있다. 아픈 사람을 보고 역설적으로 “건강해 보이네요!” “얼굴이 참 좋아 졌네요!” “피부에서 윤기나 나네요!”라고 했다면 아주 훌륭한 방편이 된다. 덕담에는 위력이 있다. 엄청난 힘이 있다. 따뜻한 덕담 한 마디가 절망에서 허덕이는 이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준다. 병고에 신음하는 이들에게 ‘덕담’을 많이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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