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로 짐을 옮기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풍원이와 장석이가 나는 듯 걸어  청풍으로 향했다. 청풍에 당도하기 전에 배가 청풍을 지나가거나 길이라도 갈려 배를 만나지 못한다면 좋은 기회가 허사였다. 청풍에 도착했을 때는 깊은 밤이 되어 있었지만 두 사람은 집에 있던 물건들을 밤새 청풍나루로 져날랐다. 그리고는 나루터에서 밤을 지새웠다. 밤에는 물길이 위험해 배가 다닐 수도 없었지만 조바심이 일어 집에서 편히 등을 붙이고 잠 들 수가 없었다.

청풍나루는 전혀 변한 것이 없었다. 풍원이가 청풍을 떠나 충주 윤 객주 상전에서 일을 하기 전까지 도진태 선주의 배를 따라다니며 일을 하던 곳이 청풍나루였다. 도호부사가 거처하는 관아가 지척인데도 청풍나루는 그때나 지금이나 한적했다. 청풍 나루가 번성해지지 않는 데는 원인이 있었다. 그 원인은 이러했다. 청풍 관아와 붙다시피한 까닭에 청풍나루에는 관원들과 양반님네들의 출입이 잦았다. 이곳에는 이들이 묵는 객사와 여흥을 즐기는 한벽루가 있었다. 특히나 한벽루는 조선 팔도에 소문이 나있을 정도로 풍광이 뛰어나 각처에서 벼슬아치들과 풍류객들이 사시사철 찾아들었다. 이들이 연회를 하거나 뱃놀이를 하려면 당연히 짐배들은 성가시고 나루에 짐을 풀어놓으면 거추장스러웠다. 관아에서는 잔치가 열릴 때마다 수시로 짐배들을 인근의 다른 나루로 쫓아버렸다. 연회가 열리지 않더라도 관아의 관문격인 나루에는 관원들과 무뢰배들이 갖은 트집을 잡아 뜯어먹으려고만 했다. 그러니 뱃꾼들도 웬만하면 청풍나루에 닻을 내리려하지 않았다.

풍원이와 장석이가 청풍나루에서 윤 객주 상전의 지토선을 만나 물산들을 싣고 강을 따라 충주 탄금나루에 닻을 내렸다. 탄금나루에서는 기다리고 있던 우마차에 짐을 한꺼번에 싣고 상전까지 옮겼다. 두 사람이 여러 날 걸려 해도 힘에 부쳤을 일을 배와 우마차가 운반을 하니 단숨에 어려운 문제도 해결되었다. 윤 객주 상전 물산 창고 앞마당에서는 청풍에서 옮겨진 풍원이네 곡물들이 일꾼들에 의해 물목별로 가려지고 있었다.

“풍원아, 이번 장사에서는 무엇이 애로점이더냐?”

우갑 노인이 풍원이에게 물었다.

“소금과 맞바꾼 작물들과 온갖 물건들을 청풍으로 옮기느라 한 사람은 장사를 작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게 문제였습니다.”

“파는 것 못지않게 유념해야 할 것은 금방 너도 말했듯이 물산들을 운반하는 일이다. 때마침 단양서 내려오는 지토선이 있어 주인어른께서 내어주셨으니 망정이지 저 많은 물건을 등짐으로 청풍서 예까지 옮겼다면 어찌 되었겠느냐? 반은 장사하고 태반은 짐을 옮기느라 허비한다면 그건 잘하는 장사가 아니다!”

“그러니 어쩝니까? 옮기기 힘들다고 장사해놓은 물건을 버릴 수도 없는 일 아닙니까?”

“방법이 있지 않겠느냐?”

“도깨비 방망이라도 있어 누가 대신 뚝딱 져다준다면 몰라도 뭔 방법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장사가 왜 필요한 지를 잘 생각해 보거라. 장사가 뭐더냐. 내 물건만 가지고는 살 수가 없으니 남의 물건을 구하기 위해 생겨난 것 아니겠느냐?”

“그야 그렇지만 그게 물건을 옮기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다는 말씀입니까?”

풍원이가 물었다. 

“일테면 바닷가에서는 생선이 흔하니 싸고 농촌에서는 곡물이 흔하니 값이 저렴하지 않겠느냐. 따라서 농촌에서는 생선이 비싸고 어촌에서는 곡물 값이 비싼 것은 정한 이치 아니겠느냐? 청풍은 산지가 많아 곡물이 귀하겠지만 충주는 농지가 넓어 곡물이 풍족하다. 그렇다면 곡물은 힘들게 여기까지 가져오지 말고 청풍 읍장에 내놓는 것이 힘도 덜 들고 값도 더 잘 받을 수 있지 않겠느냐?”

우갑 노인은 맞바꾼 물건을 힘겹게 충주까지 가지고 올 것이 아니라 시황을 봐서 유리한 것은 그때그때 파는 것도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잘 알겠구먼요.”

풍원이가 대답했다. 그러나 풍원이도 그런 생각을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이런 약초는 산이 천지인 청풍에서는 흔하겠지만 충주에서는 귀하겠지. 또 어떤 약초들은 청풍 외에는 다른 데서는 아예 나지 않는 곳도 있겠지. 그런 약초들은 품이 들더라도 여기로 가져오는 것이 유리하겠지. 더구나 충주는 각지에서 사람들이 모여드는 대처라 그런 약재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도 많으니 경우에 따라서는 비싸게 팔수도 있겠지. 약초는 잘 가지고 왔다.”

우갑 노인이 마당에서 가려지고 있는 약재들을 살펴보며 칭찬했다.

“어르신 고맙습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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