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번역가

기원전 140년 무렵, 한신(韓信)은 어려서 매우 가난하여 끼니조차 제대로 먹을 수 없는 형편이었다. 우연히 자신을 불쌍히 여긴 마을 이장이 여러 날 밥을 먹여주었다. 하지만 그때는 철부지라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다가 그 부인에게 쫓겨나고 말았다. 또 젊은 시절에는 재주도 없고 수완도 없어 오로지 병법을 읽고 무예를 연습하며 지냈다. 그때도 종종 굶주렸는데 운이 좋게도 강가에서 빨래하는 아낙에게 밥을 여러 날 얻어먹었다. 하루는 밥을 얻어먹다가 한신이 아낙에게 말했다.

“내 반드시 이 은혜에 보답 하겠소!”

그러자 아낙이 버럭 성을 내며 말했다.

“이놈아! 제 밥도 못 먹는 처지에 무슨 은혜를 갚는단 말이냐? 보답은 고사하고 어서 네 놈 밥벌이나 제대로 하고 다녀라.”

동네사람들은 그런 한신을 무능력하고 비렁뱅이라고 천하게 여겼다. 또 한 번은 동네 백정 중에 한신을 놀리고 업신여기는 젊은이가 있었다. 그가 지나가는 한신을 멈춰 세우고 모욕을 주고자 시비를 걸며 말했다.

“네놈이 비록 키가 크고 덩치는 좋지만 그 속은 겁쟁이일 뿐이다. 만약 네 놈이 용기가 있다면 이 칼로 나를 찌르고 지나가거라. 그렇지 않고 용기가 없다면 내 가랑이 밑으로 기어가거라!”

이에 한신이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내 얼굴을 붉히고는 몸을 구부려 그 백정의 가랑이 밑으로 기어들어갔다. 동네사람들이 그 광경을 보자 모두 깔깔 웃으며 한신을 겁쟁이라 불렀다. 이후에도 한신은 농사지을 재주도 없고 장사 수완도 없어 늘 남에게 빌붙어 다녔다. 사람들은 찰거머리 같은 그를 두들겨 패서 내쫓기도 했다. 그때가 진(秦)나라 말기였다. 나라가 기울면서 천하가 혼란할 때였다. 항우가 반란을 일으키자 한신이 이에 가담하였다. 하지만 태생이 미천한 신분이라 중용되지 못하고 늘 잡일이나 하는 신세였다. 실망한 한신은 항우를 버리고 한(漢)나라 유방에게 귀순하였다. 거기서 유방의 비서실장인 소하의 추천으로 총사령관에 오르는 변신을 꾀하게 되었다. 이때 한나라 군대가 모두 경악하고 말았다. 한신이 대장기를 받고서 엎드려 유방에게 아뢰었다.

“항우의 용맹함은 천하가 다 아는 사실입니다. 저는 일찍이 그를 섬겼기에 그의 사람됨을 알고 있습니다. 항우는 스스로는 용맹하나 자신의 부하에게 병권을 맡기지 못하는 필부에 불과합니다. 더구나 항우의 군대가 지나간 곳은 학살과 파괴로 많은 백성들이 그를 원망하고 저주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천하의 강자라 해도 사실은 천하의 인심을 잃은 자입니다. 하오니 대왕께서는 부하들을 믿고 일을 맡기시면 분명 천하를 얻으실 겁니다.”

이후 유방은 한신의 계책에 따라 군대를 출전시켜 항우를 무찌르고 천하를 평정시켰다. 이는 사마천의 ‘사기열전’에 있는 고사이다.

과하지욕이란 남의 다리 밑을 기어 지나가는 치욕감을 말한다. 자신의 처지가 불우하여 남에게 굴욕을 받고 살지만 미래의 큰 꿈을 위해 참고 견디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소인배라면 이런 것을 알 필요도 없다. 하지만 큰 뜻을 품은 자라면 가슴에 새겨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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