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철 수필가

처가가 살던 강에 다슬기가 많다기에 잡으러 나섰다. 며칠 전 내린 비로 강기슭에 쌓여있던 허접쓰레기들이 말끔히 떠내려갔다기에 얼마나 깨끗해졌나 보고 싶기도 했다. 아내의 친정이라고는 하지만, 아무런 일가붙이도 살지 않는다.

사실 태우는 기름값에 조금만 더 보태면 앉아서 편히 올갱이국을 사 먹는다는 그럴듯한 계산도 나오지만 오늘 올갱이를 잡으러 가는 것은 처제를 만나기 위해서다. 서울에 홀로 사는 처제는 어저께 아들 며느리 손자까지 데리고 친정 마을에 펜션을 예약하고 내려왔다고 했다. 동기간의 정이 그리워서였을까. 전화로 언니에게 올갱이가 무척 많아서 어제 두 사발 정도 잡았다며 은근히 오라는 암시를 보내왔다.

여름철은 어디를 가든 비슷하겠지만, 처가 마을 강가에도 색색의 텐트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일요일이어서인지 오후 늦은 시각임에도 지인과, 아니면 가족끼리 모여앉아 환담을 하거나 술을 마시는 모습은 우리나라 고유의 미풍양속처럼 보였다.

차를 세울만한 곳이 없어 두리번거리는데 처제가 멀리서 보고 달려왔다.

“형부 하나도 늙지 않았네요. 어쩜 40대 청년 같아요.”

“처제 나에게 아쉬운 말 하려는 것 아니우?”

“에이, 없어요. 맨날 아쉬운 소리 할까 봐. 오시느라 고생하셨어요.”

처제가 안내한 텐트 안에는 다섯 살 난 처제의 손자 미동이가 하얀 강아지를 끌어안고 놀고 있었고 제 아빠와 엄마는 이미 올갱이를 잡으러 강에 나가고 없었다. 우리는 몇 마디 안부를 주고받은 뒤 본격적인 올갱이 잡이에 나섰다.

아내가 준비해온 물안경, 올갱이 채집통 등을 들고 슬슬 여울물로 들어섰다. 30도를 웃도는 날씨지만, 여울물에 발을 담그자 더위가 재빨리 도망가 버린다. 이 재미에 사람들이 강가로 피서를 오나 보다. 그런데 생각보다 물살이 빠르게 느껴졌다.

아내는 이곳 물살이라든가 지리를 잘 알고 있으니 크게 걱정을 안 해도 될 성 싶었다. 나보다 더 조심조심 여울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이제 나이 먹은 티를 내려는 것인가 아니면 본래 겁쟁이로 태어나 그런 것인가? 하는 생각에 코웃음이 터져 나오려 했다.

눈은 어느새 어린 처남들과 물고기를 잡기 위해 밤에 관솔불을 켜 들고 첨벙거리고 돌아다니던 청년 시절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래, 저기 보 막은데 고기가 많았었지, 저기서 족대로 팔뚝만한 메기를 건져 올리던 아련한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는 엉성하게 쌓은 돌무더기였었는데 이제 견고한 콘크리트 벽이 세찬 물결을 가로막고 있다.

하지만, 그 옛날 맑고 청정하던 강물, 하얀 모래톱을 자랑하던 강바닥은 옛날 모습이 아니었다. 강바닥은 누런 이끼가 잔뜩 자리 잡고 있어 보기에도 흉물스럽고 물에 들어가고 싶은 생각도 저만큼 달아나버린다.

강에 왔으니 물에 발이라도 적셔봐야 할 것 같아서 조심조심 걸어 들어가 보니 뿌연 부산물 같은 게 일어난다. 강 상류에 있는 대형 축사에서 흘러내리는 동물의 분뇨 등이 제대로 처리되지 않아서 생긴 현상 같았다. 허탈한 마음을 안고 조심조심 보 막은 둑을 걷기 시작했다.

아무리 둘러봐도 달리 나갈 길이 없다. 올라온 곳으로 내려가기에는 너무 멀리 도는 것 같아 그리 할 수도 없었다. 수문 중간에 해놓은 폭 1m 길이 4~5m의 고기 이동통로를 따라 내려서려 했으나 자칫하면 물살에 휩쓸릴 수도 있겠다싶은 생각에 강가를 향해서 조심조심 걸어서 나아갔다. 하지만 강둑으로 올라가기에는 턱이 너무 높다.

하는 수없이 강보 난간을 잡고 밑으로 뛰어내릴 생각으로 시도해보려는데 이게 웬 날벼락, 밑으로 내딛으려는 발이 미끌 하더니 뒤로 넘어지면서 보 밑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다행히 흐르는 물 위였기에 큰 부상은 없었지만, 머리가 띵하고 엉덩이가 얼얼했다.

자세히 살펴보니 넘어지는 바람에 짚은 왼쪽 팔꿈치가 약간 까지고 오른쪽 무릎에도 멍이 들었다. 그보다 입고 있는 옷에 시퍼렇게 달라붙은 이끼가 더 문제였다. 누가 봐도 넘어진 게 명백한 사실로 드러날 수밖에 없는 상황, 흔적을 지우기 위해 적잖은 시간을 허비해야 했다.

이미 아내와 처제는 옷 입은 체 물에 털썩 주저앉아서 올갱이 수경을 물에 띄워놓고 올갱이를 줍고 있었다. 다행이다 싶었다. 내가 넘어지는 것을 보지 못했음이 분명하다. 어기적어기적 일행에게로 다가가는 중이었다.

텐트에 있던 미동이가 ‘할머니 이거’ 하며 처제에게로 접근하려는 순간 여울 바닥에 미끄러져 넘어지고 만다. 안고 있던 강아지는 물에 휩쓸려 떠내려가고, 순간 나도 모르게 미동이를 향해 달려갔다. 아니 몇 발자국만 옮기면 되는 거리였는데 그게 쉽지 않았다. 제 할머니는 여울 건너편에 있어서 손자에게 손이 미치지 않는 상황이었다. 다행이 미동이는 물에 넘어지긴 했어도 떠내려가려는 순간 내 손을 붙들고 일어섰다.

문제는 애완용 강아지였다. 큰 쥐만 하다 보니 거센 물살을 이기지 못하고 둥둥 떠내려가기 시작한다. 미동이는 강아지가 떠내려가자 발을 동동 구르며 울음을 터트린다. 어떻게든 강아지를 붙잡아야 했다. 하지만 마음과는 달리 물에서는 걸음을 빨리 떼어놓을 수가 없었다. 허둥지둥 강아지를 따라 내려가는 내 모습이 마치 광대의 발걸음 같아 보였을 거다. 이제 조금만 더 따라잡으면 될 것 같았다. 그 와중에도 아내와 처제는 도와주기는커녕 강 건너 불구경하듯 멀거니 서서 바라보기만 한다. 아니 올 수도 없는 상황이다.

이제 팔만 뻗으면 떠내려가는 강아지에 손이 닿을 것 같았다. 나를 바라보는 강아지의 눈이 날카롭게 번쩍인다. 저 눈빛은 뭐지? ‘빨리 구조해 주세요.’라는 눈빛이 아닌 것 같았다. 한 발을 앞으로 내디디며 팔을 뻗었다.

강아지가 살기를 거부한 것일까? 아니면 거친 물살을 이겨낼 자신이 있었던 것일까? 내 손이 등에 닿으려는 순간 필사의 힘을 발휘해 몸을 획 비트는 게 아닌가. 닭 쫓던 개 지붕만 쳐다보는 격이 아닌, 내 몸은 다시 한번 나동그라졌다. 그 바람에 이번에는 왼쪽 무르팍이 버드나무가지에 긁히면서 기다란 상처를 내고 말았다. 흐르는 피가 물에 씻겨 내려가 다른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는 게 천만다행이었다.

허무했다. 아니 체면이 서지 않았다는 말이 더 적합할 성싶다. 물에 떠내려가는 사람은 구조하지 못했을망정 그에 버금가는 ‘물에 떠내려가는 강아지 구조’ 뭐 이런 근사한 타이틀이 순간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긴 했는데 말짱 도루묵이 돼 버렸다.

그제야 어디서 나타났는지 미동이 아빠가 강아지 좀 건져주세요. 하며 허겁지겁 내려오는 게 보였고 그 뒤를 미동이 엄마도 수풀을 헤집고 따라온다.

강아지는 다행히 밑에서 올갱이를 잡던 사람들 손에 구조되었다. 강아지를 안고 돌아오던 미동이 아빠가 나를 보더니 ‘오셨어요.’하고 고개만 까딱하고 울고 있는 아들에게로 간다. 이런, ‘넘어지면서 다치지는 않으셨어요?’라는 말을 기대한 내가 바보였는지도 모른다. 애완동물이 사람보다 먼저라고 하는 것을 몰랐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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