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차 배워지겠지유.”

한시가 급한 풍원이와는 달리 두출이는 느긋했다.

그도 그럴 것이 평생 산을 누비며 살아온 약초꾼들도 모르는 풀이 있을 정도로 많은 약초들을 단시간 내에 익힌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두출이는 우선 먼저 생약재든 마른약재든 좋은 물건을 고르는 법부터 가르쳐주었다. 풍원이가 약초꾼이 아니라 약재를 사는 장사꾼이기 때문에 약재를 분별할 수 있는 눈썰미부터 키우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리고는 돈이 되는 약재와 돈이 되지 않는 약재를 골라내는 요령을 알려주었다. 물론 약재가 지니고 있는 약효는 돈과는 상관이 없었다.

그것은 나고 나지 않는 문제였다. 조선 팔도 산지사방 어느 곳에서든 나면 당연히 돈이 될 리 없고 특정한 지역에서 그것도 희소하게 나는 약재면 비쌀 수밖에 없는 것이 이치였다. 그러고는 두출이가 끝으로 당부한 말은 약초꾼들의 말을 무조건 믿지 말라는 것이었다.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함함한다’고 약초꾼들은 자신들이 캔 모든 약재를 만병통치약처럼 말한다는 것이었다.

한 가지 약재가 한 가지 성분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성분을 가지고 있는데, 뭐에 좋다는 것은 그 성분을 특히 많이 함유하고 있다는 것일 뿐이라는 것이었다. 그 말에 넘어갔다가는 약재로 둔갑한 소먹이풀도 귀한 약재로 속아 사게 된다는 경고였다.

“한 가지 물어볼 것이 있습니다.”

“뭐유?”

“어째서 귀한 약재를 헐값에 내주었는지요?”

두출이가 거저나 다름없이 내준 약재들에 대해 풍원이가 그 이유를 물었다.

“내 생각이 나서유.”

“내 생각이라니요?”

“약초가 뭔지도 모르고 장사를 나온 형씨를 보니 내 생각이 났어유. 첨에 산에 왔을 땐 중뿔나게 마구 돌아 댕기기만 하며 뭐가 뭔지도 모르고 아무 풀이나 막 뜯어 왔지유. 그러면 같이 갔던 동네 어르신들이 바닥에다 쏟아놓고 이건 풀이고, 이건 독초고, 이건 흔한 것이라 발품도 안 나오는 거라며 골라내는 거유.

그러고 나면 남는 것은 한 움큼도 안 되는 거유. 그럴 때마다 내가 너무 아까워 하니까 어르신들이 자기들이 캔 약초를 한 줌씩 주며 보고 배우라는 거유. 난 증말 배우라는 거로만 알고 아무 생각 없이 갖구 갔는데, 나중에야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았지유.”

“그게 아니면 뭔가요?”

“뭐긴 뭐유! 종일 맨 품만 팔고 돌아다녔으니 산에서 뭘 먹고 살수 있었겠우. 굶어죽지 말라고 십시일반으로 조금씩 도와준 거지유. 그게 큰 힘이 됐지유. 이젠 그럭저럭 약만 캐서 먹고 살게 된 것도 다 그 덕이지유.”

“고마운 분들이네요.”

“누가 힘들 때 조금만 도와주면 그게 큰 힘이 되지 않겠수?”

“정말 고맙습니다. 이 은혜는 꼭 갚겠습니다!”

“그깟 것을 가지고 은혜는 무슨. 장사나 잘해서 부자 되시우!”

고마워하는 풍원이에게 두출이가 덕담으로 대신했다.

큰머느실 익수네 집에 소금장수가 머물고 있다는 소문이 조산촌 일대에 퍼지자 소금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직접 찾아왔다. 그러니 힘들게 발품을 팔며 돌아다닐 필요도 없었다. 풍원이는 장석이가 가지고 온 소금을 앉은자리에서 모두 팔았다. 이런 장사라면 땅 짚고 헤엄치기였다.

익수네 집 마루에는 물건들이 그득했다. 풍원이와 장석이가 조산촌에서 장사를 끝내고 청풍 집으로 돌아왔다. 장석이네 집은 마당이고 봉당이고 장사를 하고 받아온 곡물과 약초들로 넘쳤다.

두 사람이 장사를 하러 다니는 동안 장석이 어머니는 집에서 물건들을 종류별로 나누고 갈무리를 해놓았다. 이제 이것들을 충주 윤 객주 상전으로 옮기는 일이 남았다. 그러나 옮기는 일도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충주까지 갔다 오려면 새벽녘에 출발해도 밤늦게나 돌아올 수 있는 긴 거리였다. 더구나 짐을 옮기려면 지게로 나르는 방법 외에는 없었다.

두 사람이 지게로 져나르려면 몇 날이 걸릴지도 모를 일이었다. 장사를 다닌 날보다 물건을 옮기는데 드는 시간이 더 오래 걸릴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달리 방법이 없었다. 두 사람은 우선 가벼운 약재들부터 골라 한 짐씩 잔뜩 지고 충주로 내려갔다.

“풍원아 운 텄다!”

아직도 청풍에서 가지고 올 짐이 많이 남아있다고 하자 우갑 노인이 말했다.

“무슨 말씀이세요?”

“마침 우리 상전 지토선이 단양 관아에 바칠 공물이 있어 올라갔는데 내일쯤 청풍을 지나 올 것이다. 그러니 서둘러 올라가 남은 물건들은 배로 실어 오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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