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 시인·충북예술고 교사

통혁당 사건으로 무기수가 되어 20년 동안 감옥 생활을 한 신영복이 자신의 지인들에게 보낸 편지를 엮은 책입니다. 이 책은 나오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나중에는 고등학교에서 논술 공부를 하는 학생들의 필독서가 되었습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랬을까요? 제가 읽어보니 꼭 해야 할 말들만 해서 그런 것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말을 생각을 담는 도구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필요한 것보다 너무나 많은 말을 하며 살고 또 함부로 하며 삽니다. 그 말이 무슨 뜻과 무슨 감정을 지니고 상대에게 건너가는지는 생각지 않고 무조건 떠들어댑니다. 이런 것을 ‘지껄인다'고 표현하죠. 시끄럽습니다.

그러나 말이나 글이, 사람 쪽에서 절실해서 꼭 해야 할 내용만 담고 나가면 말과 내용 사이에 틈이 없습니다. 꼭 필요한 그 내용이 요구한 말이 나타나서 정확하게 상대에게 전달됩니다. 바로 이런 경지가 이 책 전체에 적용되었습니다. 그래서 읽는 사람은, 글쓴이가 사소한 일상의 감정과 생활을 적었는데도, 글에서 경건함 같은 것을 느낍니다. 말 하는 사람이 말에 절실한 마음을 담기 때문에 그것이 말을 통해 전달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말을 하면서 내용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할 말을 충분이 정리한 후에 말로 옮기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입니다. 그래서 생각이 생기고 그것이 펼쳐지는 과정이 말에 생생하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을 구경하려고 논술 공부하는 학생들의 필독서가 된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맑고 투명한 정신이 찬 겨울 물처럼 움직이는데, 그것을 담은 책의 제목이 일본식 조어인 ‘으로부터의’를 쓴 게 참 아쉽고, 이해가 안 가는 일입니다. 알고 보니 출판사 측에서 붙인 제목이라고 하네요.

신영복 선생은 나중에 출감하여 왕성한 사회 활동을 펼칩니다. 여러 단체에서 강의하는 것은 물론 대학 강단에도 섭니다. 이것이 원래 그의 직업이었던 까닭에 당연한 것인데, 명강의로 이름을 날려 강의록이 책으로 출판되기도 했습니다.

한 사람이 그의 생각대로 살아가며 그 분야에서 성취를 이루는 것과 자신이 의도하지 않은 곳에서 성취를 이루는 것은 많이 다릅니다. 신영복의 경우 원래 사회 변혁을 꿈꾸던 사람인데, 그의 이름이 오래 기억나게 할 분야는 붓글씨일 것 같습니다. 옥중에서 옥살이의 지루함을 달래려고 붓글씨를 쓰기 시작한 것인데, 그것이 심오해져서 새로운 붓글씨체를 만들어내는 경지에 이르렀습니다. 옥중에서 붓글씨를 쓴 까닭에 스스로 어머니의 편지 글씨체를 모방하여 한글 체를 만들어낸 것인데, 아마도 이것이 그의 이름을 오래 빛나게 하는 이유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런 일은 서예사에서 한 획을 긋는 일입니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