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 경 희  < 논설위원 > 수필가

최근 연기 잘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유명 여배우가 은퇴를 선언했다. 연기자 생활을 할 동안 여론에 밀려 자칫 은퇴를 당할 뻔한 스캔들이 몇 차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연기자로서의 위치를 포기하지 않았던 당찬 그녀이기에 팬들의 궁금증이 클 수밖에 없다.

이유를 묻는 세인들에게 그녀가 밝힌 은퇴 이유가 참으로 황당하다. “늙어 가는 모습을 보여주며 할머니로 사람들 앞에 나오고 싶지 않았다”고 은퇴 이유를  밝힌 것이다. 데뷔 이후 거의 주인공을 맡아왔던 그녀는 팬들에게 늙은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자신의 환상을 깨는 일인 듯 싶어 겁이 나고 싫은 기분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여배우의 고백을 들으며 은퇴로 인한 심리적 공황 상태 운운하는 그녀보다 더 허탈한 마음이 드는 까닭은 무엇일까.

여배우, 나이·외모로 판단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나이 든 여배우가 화면에 뜨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대사 없이 자리에 누워 임종을 기다리는 노파 역까지도 이 삼십대의 팽팽한 여배우가 머리에 분칠을 하고 나오는 코미디 같은 상황이 태연스레 연출되곤 했다.

그 정도로 여배우는 무조건 젊고 아름다워야만 한다는 편견에 묶여 있었던 것이다. 여배우에 대한 이와 같은 편견은 영화의 본고장인 할리우드라고 해서 예외가 아닌가 보다. “할리우드 여배우들, 나이든 여성 차별하는 할리우드 제작자, 아웃”이라는 제목의 외신이 눈길을 잡는다.

맥 라이언과 우피 골드버그, 다이안 레인 등 쟁쟁한 여배우 30여명이 뭉쳐 마흔 살이 넘는 여배우에게는 제대로 된 배역을 주지 않는 할리우드 영화 제작자들에게 따끔한 일침을 가했다는 소식이다. 나이와 외모로 여성을 판단한다며 할리우드를 비난하는 여배우들의 항의가 당당하기만 하다.

언페이스풀의 주인공 다이안 레인은 나이가 들면 파괴된 미녀나 슬픈 미녀, 혹은 낡은 미녀로 묘사될 뿐이라고 한탄했고 이미 오십대에 들어선 테리 가르 역시 “나와 비슷한 연령대이거나 더 나이가 많은 사람들도 세상에는 존재한다”며 “이들을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를 쓰는 작가도 필요하고 비중이 적더라도 우리의 역할이 있어야 한다”고 강변했다.

1920년대와 30년대를 풍미했던 그레타 가르보는 자신의 이미지관리를 위해 세상과 단절한 채 은둔했던 전설적인 여배우다. 자신의 늙어 가는 모습을 대중에게 보여줄 수 없다는 이유에서 인기가 정점에 달했던 36세의 나이에 그녀는 스스로 은퇴를 선언한다.

대표작 ‘육체의 악마’에서 가르보는 매혹적인 요부로 뭇 남성을 설레게 했는데 1930년대 초 이 영화가 일본에서 상영된 후 일본인들은 밤무대 여인을 일컬어 가르보라 별칭 했고 그 가르보가 우리나라에 들어와 창녀를 갈보라고 부르게 됐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만큼 가르보는 만인의 우상이었던 인기배우였다. 스웨덴인이었던 그녀의 억양에 남아있는 독특한 매력을 닮고자 그녀의 억양을 따라하는 ‘그레타식 억양’이 사람들 사이에서 크게 유행할 정도로 그녀의 인기는 절대적이었다.

몸부림치는 삶 서글프다

정점에서 사라졌기에 대중들의 가슴속에 오래도록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남을 수 있었다고 하지만, 1990년 85세의 나이로 뉴욕에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전혀 얼굴을 비추지 않았던 그녀의 삶이 과연 아름다운 것이었나 반문하게 된다.

은퇴 후 50여년의 세월은 그녀에겐 무덤과 같았으리라는 생각이다. 자신의 망가진(?) 모습을 누구에게 들킬 새라 베일로 가리지 않고는 문밖 출입도 자제했을 그녀의 삶이 얼마나 어둡고 비참했을까.

가르보와는 반대로 팔순이 넘어서까지 일을 하며 당당하고 아름답게 살다간 여배우가 지난해 96세로 세상을 떠난 할리우드의 스타 캐서린 헵번이다.

미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연기파 여배우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4회나 수상했던 헵번은 1994년 영화 ‘러브 어페어’에 87세의 나이로 출연하는 등 노년에도 영화 출연을 지속해 왔다.

어떤 삶이 더 값지고 아름답다고 누구도 단언할 수는 없겠지만 나이 먹는 것이 두려워 몸부림치는 삶은 어쩐지 서글프고 처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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