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퇴근길에 집 앞에 있는 죽천교를 건넜다. 다리 위를 지나칠 때면 느끼는 아쉬움과 미련이 다시 밀려왔다. 다리 위에서 바라보던 물고기들의 유영을 이제는 다시 볼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도 일었다. 믿기 어려울지 몰라도 도심 한복판을 흐르는 이 하천에 공사가 시작되기 전에는 손바닥보다도 큰 잉어들이 줄지어 유영을 하곤 했었다.

공사가 시작되기 전에 물고기들이 하천에 그렇게 살 수 있었던 것은 자연스레 된 일은 아니었다. 필자가 20여 년 전 이 하천변의 아파트로 이사 올 때만해도 하천은 죽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주변 주택으로부터 흘러내리는 생활하수와 각종 폐수가 흘러 하천은 황량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때에는 아직 어린 자식들을 키워야했던 필자는 자식들 앞에 폐수만 부옇게 흐르는 하천이 못내 부끄러웠다. 하천을 바라볼 때마다 맑고 깨끗한 물이 흐르는 모습을 어서 빨리 보여주면 좋겠다는 소망이 간절했다.

한번은 모 방송국에서 청주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시인들을 소개하는 ‘詩 대공감’이라는 프로그램에 필자가 소개된 적이 있었다. 그때 필자는 필자의 첫 번째 시집인 ‘어머니의 새벽’에 소개된 ‘죽천 네 곁에서’라는 시를 낭송한 적이 있었다. 그 시는 죽천이 되살아나기를 간절히 기원하는 시였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니 필자의 소망은 단순히 필자만의 소망만은 결코 아니었던 것 같다. 죽천변 길 양 옆으로 살구나무가 7km에 걸쳐 3천여 그루나 심어져 있어 주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었다.

한편 이곳은 산책로로도 주민들의 따뜻한 사랑을 듬뿍 받는 곳이기도 했다. 주민들은 산책로를 걸으며 이 썩은 하천이 언젠가는 맑고 깨끗한 물이 흐르는 곳으로 탈바꿈하기를 고대했을 것이다.

그런데 소망은 서서히 현실로 바뀌고 있었다. 죽천을 살기기 위한 공사가 시작됐다. 각종 오폐수를 별도로 모아 흘려보내고 죽천에는 자연수만이 흐르게 하는 공사가 진행됐다. 그리고 얼마 뒤 하천은 조금씩 맑아지기 시작했다. 이곳에 작은 물고기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자연이 되살아나고 있었다. 다리 아래에서 흐르는 물을 지켜보는 사람들이 하나씩 둘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그 작은 물고기들이 자라 드디어 손바닥만한 잉어들이 줄지어 몰려다니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물고기들이 늘 우리들과 함께 해 주었던 것은 아니었다. 장마철이 되어 물이 불기라도 하면 물고기들은 어디론가 사라지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필자는 주변에 살고 있는 절친한 친구와 함께 그 물고기들이 어디로 갔을까 걱정을 하곤 했다. 그러기를 몇 차례 이젠 우리 아이들도 어른으로 성장할 만큼 세월이 지났다.

죽천변을 다시 정리해야 할 필요성 때문일까 하천에 월류수 처리 시설공사가 다시 진행되면서 하천은 많은 변화를 겪어야 했다. 물길이 다시 잡히고 각종 시설물이 설치되면서 그동안 우리를 즐겁게 해주었던 물고기들은 또 다시 어디론가 사라지고 말았다.

그런데 바로 엊그제 퇴근길에 죽천교 주변의 아치교를 건너며 필자는 놀라운 광경을 만나게 됐다. 사라졌던 물고기들이 다시 나타난 것이었다. 필자는 이 광경을 카메라 담았다. 설렘과 흥분 때문이었는지 손이 조금씩 떨렸다. 다시 돌아온 물고기를 바라보고 기뻐할 친구의 환한 얼굴이 떠올랐다. 죽천교에는 사람들이 이제 다시 하나 둘씩 모여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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