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목에는 논작물, 밭작물, 임산물에 이르기까지 시중에서 거래되는 물산들 값이 빼곡하게 적혀있었다. 하지만 물목에 적힌 값을 그대로 적용해서 팔고 살 수는 없었다. 물목에는 충주에서 거래되는 값이 적혀있었다. 충주는 인근 몇 백리 안에서는 가장 큰 고을이다. 당연히 사람도 많고 수요도 많으니 물산 값이 다른 곳에 비해 비쌀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산지에서는 그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물산들을 사들여야 그 가격에 맞출 수 있었다. 왜냐하면 물산들을 옮기는 드는 품값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머느실에서 재를 넘어 포전리로 북진까지 다시 강을 건너 청풍 장석이네 집까지 가야했다. 거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청풍에서 충주 윤 객주 상전까지 또 옮겨야 했다. 어찌 보면 물건을 팔고 사느라 다니는 품보다 운반하는데 드는 품이 더 들 수도 있었다. 거기에다 장석이 어머니 품값, 장사를 도와 줄 촌부의 수고비에 며칠 동안 묵을 숙식비까지도 모두 감안해서 소금 값은 물론 산지 물건 값을 정해야 했다. 그리 호락호락한 일이 아니었다. 어느 한 가지라도 소홀히 하면 곧바로 손해를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물목이 있으니 이것저것을 고려해서 물건 값을 가늠할 수는 있었다.

“주인장은 내일부터 우리와 함께 다니며 팔 물건이 있는 집들을 알선해 주셔요.”

풍원이가 촌부에게 주문했다.

“내가 그런 걸 잘할 수 있을까?”

촌부는 처음 해보는 일이 마음에 쓰여 자꾸만 꽁무니를 뺐다.

“나도 여직 남 머슴살이만 하다 장사는 처음이유. 날 때부터 배우고 나온 사람 있겠슈? 같이 한번 해보십시다!”

장석이가 제법 철든 소리를 했다. 그 소리에 힘을 얻었는지 촌부가 머리를 주억거렸다.

풍원이와 장석이가 식전부터 일어나 장사 나갈 채비를 했다. 그때 촌부가 마늘을 한 지게 지고 마당을 들어섰다. 아마 날도 어슴푸레해지기 전부터 밭에 나가 일을 하고 벌써 돌아오는 길이었다.

“날이나 새면 나가시지, 껌껌할 텐데 뭐가 보인답디까? ”

뭐가 뭔지 보이지도 깜깜한 새벽에 나가 어떻게 마늘을 뽑을 수 있었는지 의아하기도 하고 온몸이 물에 젖어 후줄근해진 촌부가 안쓰러워 풍원이가 물었다.

“배부른 소릴 하구있네. 농사나 일이나 남일 하는 사람이 눈뜨면 나가지, 땅바닥에 등때기 대고 쉴 새가 있다냐. 그렇게 해도 먹구 살기 힘든 게 촌일이구 남일이여!”

촌부 대신 장석이가 나서면 퉁망을 주었다.

“농사도 다 때가 있는 거라, 제때 뽑지 않으면 싹이 나거나 썩어버리니 어쩌겠슈. 오늘부터 매칠 댁들을 따라 나댕기려면 해놓고 댕기야지. 마늘도 생물이라 쉬 상해 빨리 매달아야 하는데 뜨지나 않을랑가 모르겄네.”

촌부가 마늘 지게를 조심스럽게 내려놓으면 걱정을 했다.

조산촌은 마늘 수확이 한창이었다. 마늘 곳답게 눈 가는 곳마다 마늘더미였다. 세 사람은 우선 조산촌 내 마을들부터 돌기로 했다.

“저어기가 금수산인데 그 바로 아래 거리골부터 시작해 도트며 머느실로 올라 옵시다. 거리골에는 약초쟁이가 있는데 내 친구요. 아마도 그 집에 가면 지난 가을부터 갈무리해놓은 것들이 있을거요.”

촌부가 금수산 봉우리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풍원이와 장석이가 촌부를 따라 거리골로 향했다. 거리골은 마을이랄 것도 없었다. 집이라야 계곡을 따라 숲속에 드문드문 한 채씩 보이는 것이 전부였다.

“이래봬도 이 골안에 있는 집들이 조산촌에서 젤 큰 우리 마을보다도 집들이 더 많이 들어앉아 있소. 골이 삼십 리가 넘소.”

두 사람이 실망하는 눈치를 보았는지 촌부가 말했다.

“약초쟁이라는 친구 집은 어디요?”

“다 왔소. 여기요!”

촌부가 계곡을 끼고 있는 초가집 앞에서 이름을 불렀다.

“익수! 자네가 일도 않고 대낮에 어쩐 일인가? 한참만에야 친구라는 사람이 나타나 촌부를 반겼다.

“실은 이 양반들이 소금장사들인데 우리 집에 머물고 있어. 좋은 약초들이 있으면 후한 값에 산다고 해서 왔구먼.”

“약초쟁이 집에 약초가 없겠는가? 약초야 이것저것 있지만 금이 문제지.”

“두출아, 금이야 흥정하면 되는 것이고, 있으면 어서 가지고 나와 봐!”

촌부가 친구에게 채근했다.

“물건을 봐야 금을 매기던지 할 게 아니오. 뭐가 얼마나 있는지 한 번 보십시다!”

“그려. 한 번 보여주시우!”

풍원이와 장석이도 바싹 다가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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