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영철 아동문학가

그를 처음 본 것은 대리로 승진해 청주로 내려와서다. 새롭게 발령이 난 근무지는 내가 원한 곳은 아니었지만, 모교 내에 있는 지점이라 그런대로 근무조건은 마음에 들었다. 더구나 직원들의 구성이 대학 선후배로 연결되어 있어서 분위기 또한 좋았다. 틈이 나면 업무 추진을 핑계로 은사님을 찾아뵙기도 하고 아름다운 교정을 한가롭게 걷는 호사도 누렸다.

하루는 그가 결재를 받다가 뜬금없이 한마디 던지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자기 자리로 간다. “대리님은 아직도 여기가 전에 근무하던 중앙본부로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군대로 말하자면 여기는 후방이 아니라 폭탄이 날아오고, 총알이 난무하는 전방이라는 곳입니다.” 나는 그의 뒤통수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리고 혼자 중얼거렸다. ‘저런 싹수없는 놈이 있나. 감히 선배를 가르치려 해.’

직원들과 회식이 있던 날이다. 나는 학교 대 선배이신 지점장께 슬며시 물었다. “지점장님, 저 친구 말투는 원래 싹수가 없습니까?” “왜? 무슨 일이 있었어? 저 친구 말투가 좀 그래. 그래도 심성은 착한 사람이야.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바른 소리 쓴소리를 하는 것이 흠이라면 흠이지만.”

그와 다시 같은 사무실에서 만난 것은 그로부터 십 년 뒤였다. 그때도 그는 아무렇게나 빗은 반 곱슬머리에 세상의 고뇌는 모두 안고 사는 사람모양새로 내 앞에 나타났다. 전보다 조금 희망이 보였다면 말이 많이 순화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바른 소리, 쓴소리 하는 버릇은 그대로 남아 있어 가끔 고객들과 부딪힘이 있었다. 그때마다 고객을 달래고 민원을 해결하는 것은 늘 나의 몫이었다.

자세히 살펴보면 그에게는 남이 가지지 않은 독특한 매력이 있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것이며, 나름대로 원칙을 가지고 살려는 굳은 의지 등이다. 그런가 하면 까칠한 성격 뒤에는 남모르는 따스함도 있다. 불쌍한 사람이나 어려움에 부닥친 직원을 보면 앞장서 도와주려고 무던히 애썼다.

며칠 전 그가 심근경색으로 갑자기 유명을 달리했다는 비보를 듣게 됐다. 처음에는 믿어지지 않아 이 사람 저 사람에게 확인해 보았다. 그들 역시 출장 중 갑작스러운 그의 죽음이 믿기지 않는다고 했다. 다음날, 무거운 마음으로 빈소를 찾으니 그가 영정 사진 속에서 나를 반긴다.

“이 사람아! 뭐가 그리 급했는가? 남들은 구십을 살아도 원통하다고 하는데 자네는 환갑도 못 넘기고 간단 말인가. 나에게 거침없이 해 주던 바른 소리 쓴소리는 이제 누가 해준단 말인가. 오늘 내가 있음은 자네의 쓴소리 덕분인데…” 그저 묵묵히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매에서 지난날 느끼지 못한 따스함을 느낀다. ‘잘 가게나. 언제인가는 천국에서 우리 다시 만날 날이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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