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청주민예총 사무국장

내가 아는 사람은 대부분 예술 활동을 하는 이들이다. 가끔 일하고 주로 논다. 작품이나 공연을 올리기 위해 글을 쓰고 연습을 하고 곡을 쓰고 하는 일들로 바쁘지만, 그런 작업의 대가가 곧 돈으로 환산되지 않으니 논다는 표현도 어색하지 않다.

예전보다 사정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지역에서 예술 활동을 하는 이들에게 삶의 현장은 아직 녹록지 않다. 그래도 하고 싶은 작업을 하며 사는 일에 보람을 느끼니 다행이라 말해야겠다.

연극을 하는 후배는 애 둘을 낳고 산다. 부부가 다 배우 생활을 하다 보니 공연 때마다 아이들 맡기는 일이 말 그대로 일이 되어 버렸다. 어려운 여건이지만, 참 열심히 산다. 얼마 전에는 연습실도 새 단장을 하고 야심차게 정기공연 연습에 들어갔다. 대본, 마술, 춤 등 다양한 분야에 도전하며 산다. 요즘은 요가에 푹 빠진 모양이다. 몇 번 돈벌이 기회가 있었으나 과감히 차 버렸다. 용기 있다고 말해야 할지, 참 난감하다.

판소리 하는 선배의 꿈은 세상 모든 이에게 판소리를 들려주는 것이다. 몇 해 전부터 시작한 프로젝트 ‘소풍’을 통해 그 꿈을 실현해 나가고 있다. 불러만 주면 3일간 찾아가 흥부가 완창을 한다. 밥만 주면 간단다. 더불어 반주(飯酒)가 곁들여지면 금상첨화다. 하루 종일 연습실에서 노래하고 공부하고 차 마시고 가끔 공연하며 산다.

시 쓰는 선배는 출판사를 운영하는데, 내가 보기에 신통치 않다. 영업에 관심이 없어 보이기도 하고 일이 많은 것도 즐거워하지 않는다. 가끔 일하고 가끔 술 먹고 가끔 시 쓰는 일을 천직으로 안다. 얼마 전 발품 팔아 충북지역 시인의 흔적을 찾아다니며 쓴 책을 자비로 출간했다. 이제 잘 노는 일만 남은 셈이다.

일일이 열거하자면 지면이 부족할 듯해 줄인다. 이제 어떻게 잘 놀까를 고민해야 할 때이다. 그간 잘 놀자고 몇 번의 회동을 한 적 있었다. 우리끼리의 전시도 해보고 공연도 준비하고 술 한 상 차려 손님도 초대했었다. 세상 어떤 것보다 즐거운 작업이었다. 어떤 제재도 없고 보고서를 쓸 필요도 없고 형식도 절차도 필요 없는, 돈 없는 것만 빼놓고는 자유로움 속의 예술 행위였다.

예술은 극한의 자유로움, 고독, 슬픔 속에서 나온다. 우리는 예술인에게 이런 권리를 줘야 한다. 관으로부터 보조금을 받아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노래하고 공연하는 행위에는 예술 행위에 대한 진정한 자유로움이 없다.

그렇다면 새 정부의 문화예술 정책의 답은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다. 정부는 예술가에게 조건 없는 지원을 하고 예술가는 보고서에 구애받지 않는 예술 활동을 하는 것이다. 국가가 예술가에게 판을 펼쳐주고 예술가는 그 판 위에서 잘 놀면 된다.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라 나의 좁은 식견으론 구체적 제안까지는 무리지만, 예술 행사를 도로를 닦거나 건물을 올리는 사업처럼 여기는 인식은 빨리 사라졌으면 한다. 오늘도 무더위와 맞서서 어디선가 놀고 있을 예술가들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