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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구나무 서기]거미가 지키는 집
유병숙 수필가
2017년 08월 06일 (일) 19:31:48 충청매일 webmaster@ccdn.co.kr
   
   

나는 지은 지 50여 년이 된 낡아빠진 빈집을 하나 갖고 있다.

벌겋게 녹이 핀 철대문을 여니 끼이익 아픈 소리를 낸다. 대번 눈앞을 가로막는 거미줄, 왕방울만한 거미가 문지기인양 덤벼든다. 나도 모르게 꺄악! 소리를 지른다. 어떤 보안장치보다 강력하다. 통로마다 쳐 놓은 큼직한 거미줄들, 아이쿠! 이렇게 많은 거미를 한꺼번에, 종류별로 만나 보기는 내 생애 처음인 것 같다.

내 키를 넘어선 개망초 군집이 잔디밭을 점령했다. 잡초인 주제에 마당의 주인 행세를 한다. 하긴 무슨 잣대로 주인과 객을 나누겠는가. 나무와 덩굴이 뒤엉켜 무엇이 심어져 있는지조차 구분이 안 되는데. 식물들의 흥망성쇠는 여기서도 피고 진다.

뒤틀어진 늙은 향나무들이 무섭게 내려다본다. 고사 직전의 단풍나무가 괴기스런 기운을 뿜어낸다. 봄에 진달래, 철쭉을 보았던 것도 같은데 지금은 찾기 힘들다. 마구 헝클어진 마당을 한참 넋 놓고 바라보다 보니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일일이 손이 가야 하는 마당 가꾸기의 피곤함을 잠시 잊게 한다. 우리가 모르는 그들만의 법칙으로 은밀하게 짜여진 정원. 당당한 그들 앞에 잠시 주눅이 든다.

대낮인데도 풀벌레들이 마음껏 울어댄다. 좀 와 보라고 전화한 옆집 아저씨의 투덜거림을 이해한다. 벌레가 득실거리는 담장을 같이 끼고 있으니 괴로울 만도 하겠다. 거대한 단독주택들로 채워진 멋진 동네 끝자락에 다 무너져가는 조그만 집이라니! 하지만 들어보시라! 키 큰 잡초로 땡볕을 가린 서늘한 마당에 폭포처럼 쏟아지는 시원한 교향악을. 향긋한 커피 한 모금이 아쉽다.

현관까지의 짧은 걸음에도 온갖 씨가 셔츠와 바지에 달라붙는다. 억척스런 그들에게 나는 그저 동물의 한 종류로 인식되는가 보다. 인간이 아무리 자연을 다스린다 해도 그들은 이렇게 조용히 움직이고 있다. 무서운 것들, 집주인도 몰라본다.

폭폭 찌는 계절이건만 집안이 서늘하다. 이 층으로 지어진 이 집은 난방장치의 박물관이다. 마루판을 들춰보면, 나무를 때서 그을린 흔적, 연탄아궁이 자리, 썩은 가마니가 덮여있는 기름보일러용 쇠파이프, 도시가스용 엑셀 파이프가 서로의 영역을 피해가며 기묘하게 얽혀 있다. 복잡한 인간사를 들여다보는 듯하다. 이 층에도 구들장이 깔린 걸 보면, 아마도 나무나 연탄을 지고 층계를 올라다녔던 것 같다. 유난히 많은 창에는 먼지 풀풀 거리는 두툼한 커튼이 매달려있다. 추위를 이기려 했던 일상의 고단함을 읽는다.

지난겨울 이 집이 무너질 뻔했다. 기온이 급강하하면, 수도를 약하게 틀어 놓아야 했는데 깜빡했다. 옆집 아저씨가 창문에 성에가 잔뜩 끼어있으니 와 보라고 했다. 세상에나! 이 층에서 터진 수도관 물이 아래층까지 흘러 넘쳐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그 광경이란! 마치 영화 ‘닥터 지바고’에 나오는 겨울별장을 연상케 했다. 천장에는 고풍스런 고드름이 주렁주렁 열리고, 얼어붙은 층계는 얼음궁전으로 향하는 길처럼 도도했다. 거실과 부엌의 벽은 얼음으로 도배를, 바닥은 스케이트장으로 변하였다.

어이가 없으니 오히려 웃음이 나왔다. 헌데 같이 왔던 아들 녀석이 미끄럼을 타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계단을 타고 내려오며 엄마, 영화의 한 장면 같아요. 멋있어요! 아들의 철없는 한마디가 순식간에 집안을 동화 속 풍경으로 바꾸어 놓았다. 피하지 못하면 즐기라 했던가. 겨울철 수도 관리도 제대로 못 했다는 지청구 대신, 우리 가족은 깔깔 웃으며 사진을 찍고 미끄럼을 타기 시작했다. 걱정으로 찌그러졌던 내 얼굴도 펴졌다. 우리가 언제 마루에서 얼음지치기해 보겠는가! 고드름에 얼굴을 비춰보았다. 고드름에 엉겨 붙은 입김이 더 차갑게 느껴졌다. 마치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아이들과 고드름을 따서 칼싸움을 했다. 급격한 해동은 오히려 붕괴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전문가의 견해에 따라 봄의 전령이 찾아올 때까지 빙판을 사랑하고 즐겼다.

이 집은 몇 해 전 남편의 작업실을 얻으러 다니다 엉뚱하게 마주친 집이었다. 조그마한 잔디밭으로 넘실대는 햇빛에 눈이 멀어 그만 계약을 하고 말았다.

전 주인은 사십여 년을 이 집에서 살았다고 했다. 구순의 그분은 암 환자였다. 세상 떠나시기 며칠 전에 당신의 보금자리를 나에게 팔았다. 당시 동네 시세로는 있을 수도 없는 파격적으로 싼 가격이었다. 후에 상속문제로 싸움이 붙은 할머니와 자식들을 만났다. 할아버지가 절박하게 매매했던 심정을 어렴풋하게 느낄 수 있었다. 집에 대한 애정은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가족들,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터전을 두고 싸우는 그들을 바라보며 무언가 빠진 듯해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고인에 대한 추억이라든가, 추모의 말이 없었다. 집안 곳곳에 배어있던 사연은 또 얼마나 많았을까? 대화를 듣고 있던 나는 목이 타는 듯 갈증을 느꼈다. 가엾은 양반, 얼마나 쓸쓸했을까.

형형한 눈빛의 할아버지. 우리는 아마도 전생에 인연이 있었을 것이다. 한동안은 일면식도 없는 그분이 내게 이 집을 선물로 남긴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아직도 할아버지를 기억하는 이웃들은 나를 유난히 반갑게 반긴다. 그때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분의 눈빛이 떠오른다. 집 살 때 일으킨 융자를 갚는 게 힘들고, 수없이 쏟아내는 정부의 변덕스런 부동산 정책에도 내가 이 집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어쩐지 그래야만 될 것 같은 믿음 때문이다.

햇빛이 집 안 구석구석에 들어와 있다. 바람이 텅 빈 공간을 잔잔히 채우고 있다. 아직은 여유가 되지 않아 비워둔 집. 하지만 때가 되면 저 담부터 헐어 내고 싶다. 누구든지 들어와 마당의 햇볕 속에서 차 한 잔 편하게 마실 수 있도록. 동네 아이들을 위해 책도 좀 갖다 놓으련다. 평지에 있으니 동네 어르신들의 만남의 장소로도 좋겠다. 그동안 외롭게 세워 두었으니 마음이 머무는 곳, 도란도란 이야기꽃이 피어나는 곳으로 바꾸어 주고 싶다.

세상을 하직할 때 아무것도 남기지 말고 깨끗하게 가야지 했다. 하지만 어찌 왔다 가는 인생에 흔적이 없겠는가. 서로에게 얽혀져 있는 것이 인간사인걸. 따뜻하게 추억할 수 있는 것을 남기고 가야겠다. 그런 일이 가능해지길 기도하며 대문을 나선다.

사람의 손이 닿지 않아 어설프게 자유로운 공간. 번듯한 집들 사이에 숨어있는 빈집. 흉하니 빨리 고치라는 원성이 자자하지만, 담장 안쪽은 멋진 꿈이 영그는 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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