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진/청주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 ‘한국 속담 대사전’ 등 한국문학 관련 저서 30여권을 집필한 청주대 국어국문학과 정종진(63) 교수. 직접 기르는 닭에 비유하며 인간의 성찰을 기록한 글 ‘ 닭이 어찌 인간을 두려워하랴’ 출간. 충북 괴산 청천면에서 21년째 농사를 짓고 있으며 다음에는 농업에 관한 책을 낼 계획이다.
▲ ‘닭이 어찌 인간을 두려워하랴’(범우/1만5천원)

‘한국의 속담대사전’ 등 다수의 서적 집필

신간 ‘닭이 어찌 인간을 두려워하랴’ 발표

닭과 비유한 인간의 인문·생태학적인 성찰

인공지능 세계, 인간의 야성이 사라지는 것

친환경 농법에 관한 경험·지혜 쓰고 싶어

“도시 근교에 살던 어린 시절 강아지가 있었고 이웃집에 토끼가 새끼를 낳으면 한 마리 얻어오고 병아리를 한두 마리 사다 기르기 시작했지요. 토끼장을 만들고 매일 먹이를 주며 정성들여 잘 키우니 번식을 해서 대가족을 이루는 것을 바라보는 재미가 제법 쏠쏠했습니다. 가축을 돌보는 일이 즐거웠으니 당연히 공부는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고 장래에 목장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요. 연못을 파 오리와 물고기도 길렀고 새장을 만들어 새를 기르기도 했습니다. 어류에서부터 조류, 염소, 사슴과 같은 포유류까지 그야말로 작은 동물농장이 되었지요. 많을 때는 토끼가 100마리가 넘은 적도 있습니다. 작은 형과 함께 흙벽돌을 찍어 계사(鷄舍)를 짓고 200여마리의 닭을 기르기도 했습니다. 사료도 변변히 없어 가축먹이를 일일이 만들거나 직접 구해야 했던 유년시절부터 청소년기까지 그렇게 동물농장 일에 몰두 했는데, 어느 날 가축들이 이름을 알 수 없는 병에 걸려 죽는 것을 보면서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가축도 인간과 같이 마음을 나누던 생명이지요. 정이 들었던 터라 충격과 마음의 상처가 컸습니다. 그 상처가 누적되면서 산 동물은 함부로 기를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죠. 동물농장을 하기에는 어렸고, 경험이나 경제적인 비용을 감당하는 것도 버거워 그만두게 되었어요.”

마치 만화 속에 등장하는 동물농장 주인의 후일담을 듣는 것과 같았다. ‘한국 현대시론사’, ‘문학사 방법론’, ‘한국 현대문학의 성묘사 전략’, ‘한국의 성 속담사전’, ‘한국 현대시 그 감동의 역사’, ‘한국작가의 생태학’, ‘한국의 속담 대사전’ 등 한국 문학사에 족적이 될 만한 문학관련 서적 30여권을 집필한 청주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정종진(63) 교수의 어린 시절 이야기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다,

평생 공부만 했을 것 같은 그가 어린 시절에는 가축사육에 매달렸고, 진로를 바꿔 공부에 전념하다 교수가 됐다. 장년기에 다시 ‘인문학의 근본은 농사’라를 것을 깨닫고 충북 괴산군 청천면에 토지를 마련해 틈틈이 농사를 짓는 그가 다시 닭을 기르며 닭 이야기를 책으로 썼다.

그의 신간 ‘닭이 어찌 인간을 두려워하랴’(범우/1만5천원)가 그것이다. 책의 제목만 보면 혹여 정치적인 색채가 농후한 사회 풍자 서적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온전히 생태적인 삶을 추구하는 ‘닭’의 사육자가 쓴 ‘인문학적 성찰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에는 시와 소설, 동화 등 한국 현대문학을 비롯해 우리 속담, 저명한 인문학자들의 서적은 물론 외국 인문학자들이 쓴 닭과 관련된 명문장들이 곳곳에 배치돼 있다. 한권의 책으로 담은 인문·생태학적인 닭의 총체적인 고찰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첫 장 ‘존재와 쓸모’에서는 셰익스피어의 비극 ‘햄릿’과 이병천의 단편소설 ‘매’에 등장하는 닭과 관련된 문장으로 시작한다. 그러면서 그는 ‘존재하는 것은 다 옳은가?’라고 스스로에게 물으며 ‘정말 그렇다’고 답을 내며 고라니와 멧돼지의 이야기에서부터 늑대나 여우같은 야생동물의 이야기로 이어간다. 그의 결론은 인간에게 해를 끼친다는 생각으로 적대감을 키워 온 것은 야생동물에 대한 인간들의 이해부족에서 생겨난 편견이라는 것, 간디의 말을 인용하며 ‘필요한 최소’만으로 견디는 삶이 진실로 아름답다는 걸 빨리 깨쳐야 한다고 다짐하듯 마무리한다. 이렇게 이어지는 닭의 이야기는 동양과 서양을 넘나들고 고대와 현대를 오고간다.

이 책은 두 번째 장, 희망과 절망을 비롯해 지능과 지혜, 외모와 관상, 기질과 성격, 언어와 몸짓 등 스물네 가지 측면에서 인간이 닭에게 부여한 의미를 되찾아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닭을 통해 인간을 성찰한다. 닭을 가두거나 내놓으면서 인간과 동물의 ‘자유’를 생각하고, 달걀을 꺼내오면서 인간의 ‘물욕’을 생각해 보는 것이다. 또 닭의 볏과 인간의 벼슬을 비교하며 닭의 머리에 비례해 훨씬 큰 뇌를 갖고 있는 인간이 그에 걸 맞는 생각을 펼치며 살고 있는지 자문한다. 인간의 교만에 대한 비판도 서슴지 않는다. 자연이라는 거대한 영역 안에서 인간이라는 존재가 가장 쓸모없다고 질책하는데, 그 이유는 자연의 순리를 가장 먼저 거역하는 것이 인간이기 때문이란다.

그는 또 “인간은 자연조차 자산으로 바라본다. 다양한 종(種)에 만족을 못하고 파괴하고 변형시키며 늘 쓸모를 따진다”며 “대안은 자연을 지배하려 들지 말고 최소한의 폐만 끼치고 죽는 것”이다.

“닭은 살아서는 달걀을, 죽어서는 고기를 인간에게 줍니다. 인간은 닭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알뜰하게 털어 먹는 것이지요. 인간과 가장 가까운 동물이지만 닭을 음식으로만 생각합니다. 어린 시절 아이들은 학교 앞에서 파는 병아리를 너무나 사랑스럽게 바라봅니다. 생명의 신비함을 깨닫기도 하죠. 그러면서 닭고기를 좋아하니 아이러니죠. 인간이 참 교만하다고 할까요? 이 같은 풍토를 바꿔야 합니다.”

닭에 비유한 책의 세상이야기는 생태적인 관점에서 시작해 우리의 삶도 생태적인 관점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끊임없이 강조한다. 그가 학생들에게 국문학을 가르치면서 생태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아직은 국문학과 교수라는 직함이 있기도 하지만, 실제 수많은 전문 환경운동가들처럼 앞장서서 생태운동을 이끌지는 못하고 있다. 닭을 키우고 농사를 짓는 일은 인문학자로서의 생태적인 삶을 소박하게 실천하고 있는 셈이다.

천여 평의 땅에 닭을 키우고 각종 야채와 나무를 심어 자급자족하고 있는 그는 일체의 농약을 사용하지 않는다. 많은 시간을 풀 뽑고 거름 만드는 일에 할애할 수밖에 없다. 한가지의 먹거리를 만들어내는데 농부의 땀이 얼마나 필요한지 늘 직접 체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그이기에 농산물이나 가축이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곡식은 농부의 발소리를 들으면서 큰다는 속담에서 농사는 짓는다는 말이 나온 것이지요. 농사는 노동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최근 인공지능이 미래를 좌우한다 하며 인간의 노동이 사라진다 하지요. 사람이나 동물이나 노동을 하지 않는다면 자연에서 적응하는 능력(야성)도 사라지는 것이지요. 운전조차 스마트폰이 대신한다면 인간의 손과 발은 자연히 퇴화되겠지요. 손과 발이 필요에 의해 진화했듯이 필요 없는 부위가 퇴화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몸의 노동(많은 사람들이 운동으로 대신하지만)이 병을 치료하는 기능도 갖고 있지요. 모든 게 기계화 된다면 인간의 몸은 진화가 아닌 퇴행의 수순을 밟게 됩니다. 무섭지 않나요? 기본 노동은 해야 인간이 건강한 진화를 합니다. 4차산업혁명으로 인해 야성을 거세당하게 되는 것이 인류에게 닥친 가장 큰 문제입니다. 자연에서도 멀어지는 것이지요.”

“그는 이 같은 우리 미래사회에 닥쳐올 재앙을 예측하며, 인간의 어리석음을 개탄한다. 어쩌면 그런 인간의 단점을 알고 있는 닭이기에 인간을 결코 두려워하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인문학자지만 학문보다 생태계가 파괴돼 가고 있는 시대적 위기상황을 더 절박하게 체감하고 있는 그다. 그가 직접 농사에 매달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학생들에게 문학을 가르치는 일보다 자연의, 생태의 중요성을 가르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가르치는 일에 있어서도 실천 없이 말로만 하는 것은 다르다. 직접 경험한 것을 이야기할 때 말에 힘이 실린다. 언어는 입의 언어가 아닌 몸의 언어이어야 하며 몸으로 사는 삶을 이야기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소신이다.

그는 정년을 얼마 남겨두지 않고 있다. 정년을 마치면 좀 더 본격적으로 농사를 지을 생각이다. 도시에 살던 많은 사람들이 퇴직 후 농사일을 하길 권한다. 노인들에게 맞는 일자리라고 생각한다. 혼자 농사짓는 것은 힘들지만 마을 사람들 여럿이 조합형식의 공동체를 구축해 상생한다면 도시 어린이들에게 좋은 먹거리를 공급해 줄 수 있다고 믿는다.

이에 대해 그는 “도시와 농촌, 어린이와 노인 등 세대 간의 상생을 꾀하는 일”이라며 “어린이와 도시 젊은이들이 손발을 움직이는 노동을 경험하고 자신들이 먹는 농산물이 어떻게 자라서 생겨난 것인지 알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도시의 아파트는 늘 문을 잠그고 살지만 농부들은 대문을 닫지 않고 살아갑니다. 그러면서 농작물은 온힘을 다해 돌보지요. 그 이유는 집 안에 무엇을 쌓아두지 않는데다, 집 안보다 집 밖인 들에 값진 게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현대인들이 농부들의 삶을 반추해볼 필요가 있어요. 우리가 너무 많은 것을 나 혼자만 갖겠다고 쌓아두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한국 속담 대사전’을 집필하는 데만 20년을 할애한 그가 지치지 않고 다시 무엇을 새로이 쓰고 짓고 하는 근성은 바로 이 같은 농부의 삶에서 우러나온 게 아닌가 싶다. 다음 책은 농업에 관한 것이라고 한다. 농약을 사용하지 않는 친환경 농법을 21년째 순전히 경험과 이웃농부들의 지혜를 얻어가며 터득해가고 있는 중이다.

“우리는 예로부터 닭에게 중요한 의미를 부여해 왔습니다. 이제는 닭을 먹을 대상으로만 생각지 말고 닭에게 부여해 준 의미 중 일부라도 회복시켜 줄 때 인간은 닭과 공존하는 명분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인간이 닭을 대형 닭장에 가둬 사육하고 대량학살 하곤 하지만, 그럴수록 닭은 인해전술(人海戰術)이 아닌 계해전술(鷄海戰術)로 맞서고 있죠. 닭들이 자율적으로 펼치는 전술은 아니지만, 인간들이 제 덫에 걸리기 십상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까닭입니다. 그러니 닭이 어찌 인간을 두려워할까요?”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