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철 수필가

햇볕이 자글자글 내리쬔다. 논바닥은 거북이 등처럼 갈라지고 밭고랑에 심은 고추도 시들시들 말라 죽어간다. 보다 못해 면사무소에서 양수기를 빌려다 어렵게 5단 양수를 해보지만, 논바닥을 흠씬 적시기란 아예 불가능했다.

‘빌어먹을! 에라 모르겠다.’

삽을 논둑에 꽂아놓고 터덜터덜 마을회관으로 향했다. 마을이 번창할 때는 50여 호가 넘었는데 이제 절반도 안 되는 20여 호로 줄었다. 그나마도 70이 넘은 사람이 대부분이다.

“아니, 이장님이 이 시간에 어쩐 일이래요?”

마침 회관에 나와 있던 경수 할머니가 나를 반긴다. 회관에는 노인들이 모여서 식사도 하고 운동기구가 있어서 간단한 운동도 할 수 있지만, 우리 마을 어른들은 대부분 10원짜리 고스톱을 치거나 장기로 시간을 보낸다.

“들에서 오는 길인가 베. 술 한 잔 드릴까?”

회관에는 항상 술이 떨어지지 않는다. 외지에 나가 있는 사람들이 고향을 방문하든가 누구네 집 아들이 다녀가면 으레 마을회관에 들러 어른들에게 인사를 하고 심심할 때 드시라며 소주 한 상자 값은 내놓기 마련이다. 지난 정월에는 소주가 다섯 상자나 쌓였었고, 돼지고기도 많이 들어와서 한동안 동네 어른들이 잔치하다시피 했다.

“왜 혼자 계세요?”

“동규 엄니는 집에 밀가루 가지러 갔어유. 이장님도 조금 기시다 부침개 한쪽 잡숫고 가셔.”

청춘은 모두 자식들에게 물려주고 이제 뼈대만 앙상하게 남은 어른들의 심성은 그저 곱고 인정이 넘친다.

“아닙니다. 많이들 드세요. 저는 앞뜰에 나가봐야 해요.”

따라준 소주를 단숨에 마시고 감치를 집어 드는데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오랜만일세.”

불알친구 덕상이였다.

“그래 잘 지냈는가?”

“그럼, 오늘 시골에 놀러 가려고 하는데 시간이 어떤가?”

“비가 와야 뭘 하지. 하루쯤 미루면 되지. 무슨 걱정인가. 내려오게.”

한 시간쯤 지나자 덕상이의 고급 승용차가 마을에 나타났다. 지금은 길이 잘 닦여 청주에서 40분이면 충분하다. 마을에는 일가붙이가 살고 있지 않지만, 이곳에서 잔뼈가 굵은 그였기에 항상 고향 마을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소주 한 상자와 음료수 두 상자 그리고 과자까지 한 상자를 내려놓는다.

혼자 오는 줄 알았더니 일행이 두 사람이나 더 있었다.

모두 덕상이의 사업 친구들이라 했다. 그들이 주섬주섬 차에서 내리는 것은 언뜻 봐도 족대와 투망 등 물고기를 잡기 위한 도구였다.

“이 사람 농촌에 가뭄이 들어 난리인데 고기 잡으러 왔는가?”

“미안해. 요즘 도시라고 나을 게 하나도 없다네. 모처럼 민물고기 잡아서 매운탕이나 끓여놓고 옛날이야기나 나눔세. 이 친구들도 모두 시골 태생이라네.”

고향에 찾아온 친구를 박절하게 내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들과 같이 어구를 들고 앞 개울로 나가 투망을 치기 시작했다.

“아직도 투망 던지는 솜씨는 여전하군. 지금도 이장을 보고 있다며?”

“그려. 누가 맡을 사람이 있어야지. 그런데 친구가 온다는 소리를 듣고 고기가 다 도망가버렸는지 한 마리도 보이지 않네.”

“그러게. 쌍곡으로 넘어가볼까?”

“그래야 할 것 같네.”

우리는 어구를 차에 싣고 쌍곡으로 향했다. 그곳은 속리산 국립공원 끝자락이어서 경치도 좋고 물도 맑은 곳이지만, 사람의 왕래가 잦아서 좀 찜찜하기는 했다. 예상했던 대로 고기가 잘 잡혔다.

“이만하면 한 냄비 거리는 되겠어.”

날씨도 덥고 누가 볼세라 투망을 사려서 비료 포대에 넣고 차 있는 곳으로 가기 위해 어정어정 걸어 나오기 시작했다.

왱하는 오토바이 사이렌 소리가 요란하게 울리더니 정복 입은 경찰관 두 명이 내려서 우리에게로 다가왔다. 인근 지구대에 근무하는 경찰관들이었다.

“아니, 이장님 아니세요?”

“네. 그런데 어쩐 일이요?”

“누가 투망으로 물고기 잡는다는 신고가 들어와서 왔는데 설마 이장님이?”

투망을 던지면서도 마음이 조마조마했었는데 기어이 일이 터지고 말았다.

“이장님 손에 든 것 투망 맞지요?”

“저 그게….”

여간 부끄럽게 느껴지지 않았다. 이장이 아니라고 해도 지각 있는 사람이라면 불법 어구를 이용해 고기를 잡으면 안 된다는 것은 알만한 나이가 아닌가.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 숨고 싶을 정도로 창피하고 미안했다.

“오랜만에 고향 친구들이 와서 매운탕 끓여서 술 한잔하려다가 이렇게 되었네요. 못 본 것으로 해주면 안 될까요?”

“저희도 그러고 싶지만, 신고가 접수되어서 어쩔 수 없습니다. 신고자에게 결과를 통보해주어야 하거든요.”

경찰관도 난감해하기는 나와 같은 것 같았다.

정말 신고가 들어오지 않은 상황이라면 없던 일로 해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이장님 저희가 최선을 다해보겠지만, 어려울 것 같습니다. 지구대에 가서 서류 작성 좀 도와주세요.”

하는 수없이 경찰관을 따라서 지구대로 향했다. 지구대에는 양복 입은 젊은이 두 명이 지구대장과 무슨 이야기를 하다가 우리가 들어가자 돌아다보는데 서울에 있어야 할 아들이 그곳에 함께 있었다.

“아니! 아버지 웬일이세요?”

“너야말로 소식도 없이 웬일이냐?”

“여기 지구대장이 고등학교 동기예요. 이번에 승진했다고 해서 축하해주러 왔는데, 설마 아버지가 고기를 잡으시다가…?”

“그럼 고기 잡는다고 신고한 게 너란 말이냐?”

아들놈은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지구대장을 바라본다. 순간 지구대 사무실이 얼음장처럼 싸늘해진다.

“충성!. 찬규 친구 이승철입니다.”

금테 모자를 쓴 지구대장이 벌떡 일어나 나에게 거수경례를 한다. 상황이 이상하게 꼬여가기 시작했다. 하필이면 이 부끄러운 자리에 자식 놈이 내려와 있을 건 뭐며 더구나 지구대장이 친구라니 난감했다.

“아버님! 죄송합니다. 법을 집행하는 최일선의 관리로서 사적인 감정으로 아버님을 봐 드릴 수는 없습니다. 용서해주십시오”

다시 한번 지구대장이 나에게 경례를 한다.

“우리 아들 친구라니 말 놓겠네. 법대로 처리하게. 암 그래야 하고말고.”

“아버지 과태료 나오면 제가 낼게요. 승철아 과태료 얼마인지 나에게 가르쳐 줘.”

“그래. 알았어. 너에게는 신고 포상금이 조금 나갈 거야. 아마 그 돈에다 적잖이 보태야 할 것 같다.”

“아버지! 친구분들이랑 저 강 건너 매운탕 집으로 가세요. 제가 모시겠습니다.”

나도 친구들도, 모여 섰던 지구대 경찰관들도 이 어처구니없는 사실에 냉소를 금할 수 없었다. 아들놈이 가자는 데로 매운탕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그래도 무척 가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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