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청주민예총 사무국장

요즘 들어 청주가 유명세를 치르고 있다. 큰 피해를 남긴 폭우로 실시간 뉴스에 청주가 오르내렸다. 최근에는 사상 최악의 수해에도 불구하고 국외연수를 떠난 몇몇 충북도의원과 국민을 레밍에 비유한 한 의원 때문에 뉴스 일면을 장식하고 있다. 청주를 알리는 홍보 효과가 있긴 하나 좋지 않은 일이라 유쾌하지 않다.

레밍(lemmming)은 비단털쥐과에 속하는 설치류의 일종으로 쥐 가운데 작은 것을 부르는 말이라 한다. 1980년대 초 주한미군 사령관 위컴은 집단주의적 습성을 들어 한국인을 레밍에 비유하고 민주주의가 맞지 않는다는 발언(“한국 사람들은 레밍과 같이 새로운 지도자가 등장하면 그에게 우르르 몰려든다.”)을 해 레밍과의 인연이 시작된 셈이다.

국외연수와 레밍 발언에 대한 비판여론이 확산되자 충북도 김 의원은 장문의 해명글을 올렸다. 어떠한 사건은 관점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다. 지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관련한 그의 막말이 그에게는 당연한 소신일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그의 행동이나 말은 근저에 깔린 그의 정치적 신념이나 국민을 바라보는 관점이 만천하에 드러났음은 분명하다.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못하는 태도는 어떠한 변명도 통하기 어렵다. 더구나 나의 잘못에 다른 사람을 끌어드리려 하고 비교하고 남을 탓하는 태도야말로 지극히 개인주의적, 이기주의적 성향이 강하다는 방증일 것이다. 정치는 나 자신을 위해 하는 것이 아님을 모르는 행위이다.

필자는 한 개인에 대한 정치적 성향이나 잘잘못을 말하고 싶지는 않다. 사회는 생각이 다른 여러 사람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건강한 나라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오랫동안 일방통행만을 강요해 왔다. 나와 다르면 적으로 간주하고 적은 죽어야 마땅한 위험천만한 논리가 지속되고 있다.

우리의 역사를 보더라도 그렇다. 지도자를 향한 충성심이 강했던 한국 사회를 보고 위컴은 레밍을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기업과 언론이 앞장선 일방통행의 강요는 한국 사회를 병들게 했고 부패하게 했다. 기득권은 나날이 살찌고 더 많은 지방을 축척하기 위해 온갖 수단을 가리지 않고 정권 유지에 앞장섰다.

그러나 국정농단 사건을 계기로 국민은 거짓되고 조작된 세상에 환멸을 느끼기 시작했다. 국민은 분노했고 거리로 나섰다. 그리고 정권을 바꾸었다. 잘못된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국민의 열망이었다. 이 어찌 레밍의 집단주의적 습성과 비교할 수 있겠는가. 이는 대기업의 노조 활동과도 다르다. 특정 단체나 이익집단의 행동과도 다르다.

권력과 자본을 따라 개인의 이익을 위해 소신도 없이 몰려다니는 사람은 늘 존재한다. 오랜 세월 조직화되고 체계화된 구조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 우리의 정치문화도 이러한 한계를 안고 있다.

그러나 위컴은 한국 사회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 국민은 독재를 타도하고 민주주의를 쟁취했으며, 2017년 새로운 세상을 향한 미래를 스스로 선택했다. 이제 권력과 권위를 내세우며 국민을 대하는 정치인은 살아남을 수 없다. 민중(언제든 세상을 변혁할 힘을 내재하고 있는 국민)은 절대 사사로운 이익을 따라 몰려다니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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