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부 최풍원 장삿길로 나서다 <139>

풍원이 남매가 청풍으로 떠나오고 주막집 아주머니도 신풍으로 이사를 한다고 했었다. 그랬던 것이 어느새 세월이 그렇게 흘러가버렸다.

수년 만에 다시 연풍을 찾아가는 풍원이는 만감이 교차했다. 소조령을 올라서자 멀리 구름을 뚫고 주흘산이 우뚝하게 보였다. 주흘산 봉우리에서 동남쪽으로 뻗어 내린 큰 줄기 중간쯤에 다시 솟아오른 봉우리가 마골산이었다. 그 마골산 아래가 수리골이었다. 움막에서 짐승처럼 견디며 살아냈던 곳이었다. 돌이켜보면 그래도 그때가 식구들이 모여 살았던 행복한 시절이었다. 고향은 아니었지만 고향 같은 곳이었다. 그러면서도 애증이 함께 서려있는 곳이었다. 풍원이는 고갯마루에 지게를 받쳐놓고 한참동안 옛 생각에 젖어있었다. 그러나 마냥 그런 감상에 빠져있을 여유가 없었다. 풍원이가 지게를 지고 서둘러 고갯길을 내려갔다.

연풍은 풍원이 남매가 떠났던 그때나 지금이나 조금도 변한 것이 없었다. 어머니를 잃었던 연풍고을 관아도 거리도 예전 그대로였다. 너무나 변한 것이 없어 풍원이는 자신이 잠시 그 당시로 되돌아간 것이 아닌가하고 착각을 일으킬 지경이었다. 풍원이가 정신을 가다듬으며 예전 몸을 의탁했던 주막집으로 향했다. 오늘은 일단 그곳에서 하룻밤을 지낼 생각이었다. 주막집도 아주머니와 분옥이만 다른 주인으로 바뀌었을 뿐 예전 주막집 모습과 전혀 달라진 것이 없었다. 신기한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이고, 총각은 첨보는 얼굴이네!”

삽작을 들어서는 풍원이를 보고 주막집 젊은 주모가 반색을 했다.

“저것이 우린 본체만체 쉰밥 보듯 하더니 젊은 것이 오니 사죽을 못 쓰네!”

“객지를 떠도는 것도 서러운 데 주모조차 괄시를 하니 술 맛이 지청구 구만!”

주막집 들마루에서 탁배기를 나누던 나그네 둘이 푸념을 늘어놓았다. 아직은 길손들이 들기에 좀 이른 시각인데도 주막집에는 여기저기 사람들이 퍼질러않아 농짓거리를 하고 있었다.

“괄시는 누가 했다고 그려! 벌써 몇 년째 같은 얼굴을 그렇게 맞으면 칙사대접이지, 어떻게 매번 정월초하루처럼 반긴다우. 이 총각 앉게 엉덩짝이나 좀 빼슈!”

주모가 사내들 엉덩이를 탁탁 치며 말했다.

“젊은 친구, 이리 올라앉게나!”

사내들이 엉덩이를 빼며 들마루 한쪽을 비워주었다. 풍원이가 지게를 받쳐놓고 사내들이 앉아있는 들마루로 올라갔다.

“어디서 오는 길인가?”

“충주에서 옵니다.”

“뭘 하는 젊은인가?”

“행상입니다.”

“뭘 하는 행상인가?”

“소금을 팔러 왔습니다.”

“소금을 지고 충주서 예까지 왔단 말인가?”

나그네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연풍까지 져다주고 삯을 받으려는 게 아니고, 팔려고 충주부터 예까지 지고 왔단 말이지.”

나그네가 확인을 하듯 또박또박 물었다.

“예. 제가 지고 다니며 직접 팔려고 합니다.”

풍원이가 나그네를 확인시켜주듯 또박또박 대답했다.

“소금이 무슨 금은보화라도 되는 줄 아는가?”

나그네가 풍원이 대답을 듣더니 코웃음을 쳤다.

“무슨 말씀이신지요?”

풍원이가 영문을 몰라 나그네에게 되물었다.

“젊은이, 생각 좀 해보게나. 충주에서 소금을 떼어왔다면 한 섬에 두 냥은 주었을 테고, 연풍까지 지고 왔으니 곱절을 남겨 넉 냥을 받는다고 해보세. 장날이 서는 날 한 자리에서 파는 것도 아니고 발품을 팔며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팔려면 며칠이나 걸릴 것 같은가?”

“글쎄요.”

풍원이는 소금 한 섬을 며칠이나 걸려 팔 것인가는 미처 생각도 해보지 않았다. 그저 산골로 돌아다니며 팔면 성가신 사람들과 부닥치지 않고 맘 편하게 장사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만 했다.

“요즘 산골에는 돈이 씨가 말랐을 때니 사도 꼭 필요한 만큼씩만 살게다. 한 집에서 한 되를 산다고 하면 한 섬이면 열 말, 열 말이면 백 되, 백 되면 백 집은 돌아다녀야 할 테고, 하루에 열 집을 판다면 열흘이요, 스무 집을 판다고 해도 하루에 두 말씩 해서 닷 세는 걸리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주막집에서 먹고 자는 데만 하루에 삼 전 씩 한 냥 오 전을 치고 다 팔아야 오 전 밖에 더 이문이 남겠는가. 그 오전도 오롯이 남는다고 장담할 수 있겠나. 하루 종일 발바닥에 불나도록 걸어 일 전도 못 버는 장사를 하려고 무거운 소금을 지고 산길을 헤맨단 말인가. 돈도 못 벌고 등골만 빠지는 그런 장사를 뭣 하러 다니는가?”

나그네의 말이 구구절절 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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