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주 수필가

부여군 임천면의 가림성을 끝으로 백제부흥운동에 관련한 산성 답사를 마치려고 했다. 그런데 가림성을 답사하고 돌아오는 길에 청양에서 두릉윤성 입구를 보았다. 두릉윤성도 그 발음 때문에 두루미성, 주류성으로 추정된다는 말을 들었기에 차를 돌려 들어가 볼까하다가 그냥 지나쳤다. 그런데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오늘 토요일을 맞아 기어이 두릉윤성을 찾아가기로 했다. 세상에 마침이란 건 있을 수 없다. 궁금하면 또 찾아가는 것이다.

9시가 안되어 두릉윤성이 있는 백곡리 마을 어귀에 도착했다. 마을 어귀에는 마을 역사만큼 크고 우람한 느티나무 한 그루가 서 있고 그 아래 충효문이 있다. 또 두릉윤성, 3·1만세운동 기념비 등 마을의 역사를 이르는 각종 시설물이 조성되어 있다.

백곡삼일운동기적비에는 1919년 4월 5~6일에 700여명이 참여하여 많은 사상자를 냈던 정산 만세 운동에서 백곡리 출신으로 옥고를 치르거나 태형에 처해지거나 부상을 당한 이들의 사적을 적어 기리었다. 이 백실마을은 백제부흥운동, 임진왜란 때 의병운동, 일제 강점기의 끊임없는 저항 운동으로 잃어버린 주권을 찾기 위해 자존심을 걸고 저항했던 역사를 가지고 있는 마을이라는 그야말로 백제 멸망 후에 백제의 혼을 살리기 위한 백제부흥운동의 정신을 이어오는 마을로 전해온다는 표지판도 있었다.

느티나무 아래서 마을을 바라보니 두릉윤성이 있는 계봉산으로 보이는 나지막한 산이 팔을 벌려 삼태기처럼 마을을 쓸어 담고 있는 모습이었다. 하늘에서 내리는 온갖 볕이 마을로 쏟아져 들어오고 산의 정기가 내려와 담뿍 괴는 형국이다. 인가는 산줄기를 타고 몇 채씩 모여 있고 마을 안길 양쪽은 텃밭이다. 진입로를 따라 들어가도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진입로 아래쪽에는 두릅나무가 이제서 싹이 실하게 돋아났다. 텃밭에는 마늘이 이제 다 자라서 알이 굵어가는 모습이다. 마을 안 개가 짖어대는 곳에 노인장이 밭에서 일을 하고 있다. 두릉윤성 가는 곳을 물으니 친절하게 가르쳐 준다. 다시 내려와 노인장이 일러준 대로 지곡리로 향한다.

마을은 이름대로 큰 저수지가 있고 조금 더 윤택해 보였다. 사람도 더 많고 생기가 넘친다. 이 마을도 역시 계봉산의 또 다른 줄기가 감싸 안고 있다. 백곡리가 서향 마을이라면 지곡리는 온전하게 남향 마을이다. 마을은 온통 꽃에 묻혀 있다.

두릉윤성은 마을을 안고 돌아 목숨 걸고 짖어대는 개들을 뒤로 하고 산으로 올라가는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가야 한다. 가파른 시멘트 포장길을 올라간다. 진입로 양쪽에 잡목을 베고 소나무를 가꾸느라 중장비가 마구 파헤쳐 놓았다. 능선에 올라가니 두릉윤성 가는 길과 약수터로 가는 갈림길이 나온다.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돌아서니 바로 남문지가 보인다. 남문지 앞에 커다란 돌에 백제 두릉윤성과 백제 부흥운동의 사적을 기록해 놓았다. 청양에서는 이곳을 백제부흥운동의 근거지인 주류성이라고 주장한다. 이곳에서 부흥군의 저항이 있었던 것은 틀림없는 사실일 것 같다. 남문지는 흩어진 돌을 모아 훗날 다시 쌓은 것 같다. 아마 그랬을 것이다. 자연석을 그냥 성황당 쌓듯이 쌓아 올리고 그 위에 나무를 심었다. 나무 두 그루는 크기로 보아 오래된 나무는 아닌 것 같다. 마치 수문장 같다. 자연석은 다듬어 쓴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