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규 홍  < 논설위원 >

대오를 이룬 긴 행렬이 어느 길을 가는 데, 그 길목 중간에 오물이 널려 있었다고 하자. 다른 길은 없었고 그 길을 지나서 가야만 했으므로 행렬은 할 수 없이 오물을 밟고 지날 수밖에 없었다고 하자. 행렬 중 어느 사람은 잘못해 큰 오물을 밟았고, 어느 사람은 작은 오물을 밟았다고 하자. 또 어떤 사람은 딴 사람에게 오물을 튀기기도 했다고 하자.    

행군이 오물구간을 지난 뒤에 행군대오에 들어온 사람들은 오물을 밟고 온 사람들에게 “오물이 많이 묻었다, 적게 묻었다”라고 이런 저런 말들을 한다고 하자. 오물을 밟아서는 안 되는데 오물을 밟았다고 이들을 나무라는데, “네 조상은 행동이 좋지 못해 오물이 많이 묻었다”고 나무란다고 해보자. 또 “오물이 널린 길을 걸어 온 사람들의 잘 잘못을 가려서 후세에 알려야 한다”고 해보자.

정치권 과거 캐묻기 분란

갈 길은 구만리인데, 다른 길에서는 대오를 이룬 행렬이 걷는 게 아니라 앞으로 달려 나가고 있는데, 앞으로 나갈 생각은 하지 않고 오물을 밟고 온 행렬에게 오물을 묻히고 온 사람들 탓하면서 자꾸 뒤만 돌아보게 된다면, 그 행렬은 어떻게 될 것인가 한번 생각해보자.

힘이 없어 나라를 빼앗겼고, 동족끼리 피 흘려 싸웠던 질곡의 역사를 거쳐 온 우리나라에서 반듯한 가문을 유지한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여염집 가정을 유지한다는 것조차도 어려웠던 시절을 겪으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그런 난리통에 사람이 살아가는데 먹고사는 일이 가장 우선이었음을 우리 선대들은 체험으로 알고 있었다. 보릿고개는 으레 있는 것으로만 알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 시절을 거치면서 우리 선대들은 먹고사는 문제 해결을 위해 무던히도 많은 고생을 감내했던 것이다.

말이 좋아 ‘고요한 아침의 나라’였지 기실은 세계와 동떨어진 은둔의 나라였고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의 하나였다. 그런 나라가 이제는 경제규모가 세계 10위안에 들고, 지금 한 창 진행 중인 아테네 올림픽에서도 우리 경제 규모에 걸맞게 10위권을 넉넉히 지키고 있다. 100여년전은 말할 것도 없고 50여년전의 우리를 생각해보면 실로 엄청난 비약이고 발전이 아닐 수 없다. 

그런 나라에서 지금 과거 캐묻기 소용돌이에 휩싸여 앞날을 전혀 예측할 수가 없다. 그런 와중에 집권 여당의 의장인 신기남씨 선친의 행적이 문제돼 취임 불과 몇 달 만에 의장직을 물러나게 됐다. 여당 측에선 정치적 계산은 전혀 없다고 주장하지만, 대부분의 국민들은 야당을 겨냥한 역사 바로 세우기로 알고 있는, 여당의 과거사 청산 작업에 오히려 여당 의장의 발목을 잡아버린 것이다.

질곡의 우리 역사에서, 이 나라에 살았던 사람 치고 흠결 없이 살아온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아마도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 나라에서 지금 후대들이 선대의 과거를 들쳐 내려고 하고 있다.

역사는 역사로 두어야 하는데 어두운 역사를 들쳐 내어 분란의 소용돌이를 만들어서 정치적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과연 얼마나 될지 한 번 생각해보자. 지금 정치권의 중심에 서 있는 사람 치고 그들의 주장처럼 그들의 선대가 과연 떳떳하게 일제시대를 거쳐 온 사람이 몇이나 되는 지 그것도 궁금하다.

오물이 널린 길을 지나온 행렬에서 오물 안 묻힌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듯이 말이다. 그럼에도 여당은 계속 밀어붙일 모양이다. 그들이 쏜 총의 유탄에 그들의 동지를 잃고도 말이다.

지난 대선 때, 신기남씨는 당시 야당 대선 후보 부친이 일제시대 때 법원서기로 근무한 사실을 두고 친일행적이라고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었다.

희망·진취적 정치 해야

야당 후보 아들의 병역면제 건과 함께 물고늘어지면서 타격을 입혔고, 야당 후보는 그런 대세에 밀려 낙선해 정계를 은퇴했다. 그 후 일년 반이 지나, 야당 후보 부친의 친일 행적을 물고 늘어졌던 그 당사자가 친일 행적을 한 부친의 전력 땜에 자신도 결국은 여당의장직을 내놓게 된 것이다.   

법원서기를 했던 야당 대선후보 부친보다 헌병오장을 했던 여당의장 부친의 행적에서 실제로 물 고문을 받았다는 증인이 나오는 것처럼 친일 규명 주장은 여당 인사의 선대 중에 동족을 괴롭힌 친일 행적이 더 많이 밝혀져 자신들을 옥죄는 족쇄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국민들은 그래서 아무도 자유로울 수 없는 지난 일 들추기를 거둬들이고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권이 이제 진취적이고 미래를 향한 희망의 메시지를 내보이는 큰 정치를 보여주기를 강력히 희망하고 있는 것이다. 제발 이제 그만 좀 하고 민생을 챙기는 정치를 좀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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